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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은 6.25전쟁이 발발한지 꼭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눈 이 전쟁으로 수백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한반도는 초토화가 됐다. 그러나 우리나라 청소년 가운데 절반 이상은 6.25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쟁기념관 서규화 학예팀장을 만나 6.25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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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은 언제, 왜 일어났는지 설명해 주세요.
“1950년 6월 25일 새벽, 구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한이 남한을 쳐들어오면서 시작됐습니다. 구 소련의 팽창 야욕과 김일성의 남한 공산화 야욕이 맞아 떨어진거죠.”
-북한군은 남침 3일만에 수도 서울을 점령하고 또 두달도 채 안되어 낙동강선까지 밀고 내려갔습니다. 당시 북한과 남한의 군사력은 차이가 많이 났나요?
“엄청난 차이가 있었습니다. 북한은 전투기 211대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남한은 단 한 대도 없었습니다. 오직 연락기 22대와 연습기 10대 뿐이었죠. 탱크도 북한은 242대를 갖고 있었지만, 남한엔 전혀 없었습니다. 병력도 북한이 남한보다 2배나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다시 남한군이 반격에 나설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유엔군의 지원이 큰 힘이 됐습니다. 그러나 우리 국군과 국민들이 힘을 보태지 않았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북에 포로로 잡혀도 항복한 국군 부대가 단 한 곳도 없었다는 점, 전국에서 폭동 한번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지요.” -
-3년 1개월동안 계속된 전쟁은 많은 피해를 남겼을테지요.
“전국토가 폐허가 됐고, 어마어마한 인명피해를 냈습니다. 민간인 100만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했고, 국군 15만명과 유엔군 3만7000명이 전사했습니다. 무엇보다 ‘전쟁고아’가 10만 명이나 발생했지요.”
-6.25전쟁 중 가장 인상적인 사건이나 장면을 하나만 꼽아주세요.
“개인적으로 1950년 12월의 ‘흥남철수작전’이 가장 인상적입니다. 이 작전을 통해 민간인 9만1000여명도 대피할 수 있었는데요, 그때 목숨을 걸고 배를 탄 사람들과 타지 못한 사람들의 현재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겁니다. 배를 탄 사람들은 자유를 누리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으니까요.”
-60주년을 맞는 올해는 천안함사태와 맞물려 6.25전쟁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만, 사실 요즘 어린이들에게 6.25는 ‘잊혀진 전쟁’입니다. 왜 우리는 60년 전 전쟁을 기억해야 할까요?
“역사는 반복됩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제2의 6.25가 또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6.25는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입니다. 지금 한반도는 ‘휴전 상태’일 뿐입니다.”
-6.25를 잘 알기 위해서 우리 어린이들이 가볼 만한 곳을 소개해 주세요.
“우선 우리 전쟁기념관에 자주 들러주세요. 6.25특별전을 비롯해 다양한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판문점이나 북한을 볼 수 있는 전망대를 한번 가보는 것도 안보의식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The 인터뷰] 전쟁기념관 서규화 학예팀장에게 듣는 한국전 이야기 "6·25의 상처 결코 잊어선 안됩니다"
류현아 기자
haryu@chosun.com
1950년 북한의 남침…민간인 100만 명 죽고 전쟁고아 10만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