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배 작가의 서울 이야기] 인조반정과 세검정(하)
신현배
기사입력 2010.05.22 00:25

광해군을 몰아낸 이기축 일행, 홍제천으로 향하는데···
"거사를 이뤘으니 칼을 씻으러 가세"

  • 이기축은 책을 받아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곧바로 사직골에서 제일 큰 기와집을 찾아갔습니다. 대문을 두드리자 하인들이 나왔고, 아내가 말한 대로 그들은 그를 집 안으로 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기축이 하인들과 옥신각신하며 승강이를 벌이자, 잠시 뒤 능양군이 집 안에서 나왔습니다. 능양군은 글을 배우러 왔다는 말에 이기축을 사랑방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이 대목이 무슨 뜻인지 가르쳐 주십시오.”

    능양군은 이기축이 펼친 <맹자>의 한 대목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탕(湯)왕이 걸(桀)을 쫓아내고 주무왕이 주(紂)를 쳤다는 대목이었던 것입니다.

    능양군은 탐색하듯이 이기축을 한참 쏘아보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누가 자네에게 이런 일을 시키던가?”

    “제 아내입니다.”

    “알겠네. 그만 물러가도록 하게.”

    이기축을 돌려보낸 능양군은 온종일 생각에 잠겼습니다.

    ‘어제 주인 여자는 나한테 은잔에 술을 따라 바치고, 술값도 받지 않았어. 그런데 이번에는 걸, 주를 쫓아낸 대목을 가르쳐 달라고 남편을 보내다니···. 혹시 우리 거사를 눈치 챈 게 아닐까?’

    능양군은 저녁에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이 찾아오자 아침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내버려 두면 큰일 나겠습니다. 당장 가서 해치워 버리지요.”

    그들은 능양군과 함께 주막으로 쳐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이기축의 아내는 이들이 찾아올 줄 알았다는 듯 정중하게 맞이했습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드릴 말씀이 있었거든요. 저희 부부는 주막을 하고 있지만 천한 신분이 아닙니다. 그리고 저의 서방님은 무술이 뛰어나고 힘이 천하장사입니다. 거사에 끼워 주신다면 보탬이 될 줄로 압니다.”

    능양군이 입을 열었습니다.

    “우리 거사를 어떻게 알았는가?”

    “저는 어렸을 때 우리 동네에서 어떤 도사에게 여러 가지 술수를 배웠습니다. 제가 천문을 보니 지금 임금이 물러가고 어진 임금이 나타날 때더군요. 관상을 보니 나리께서는 임금이 되실 상입니다. 제가 부모님의 뜻을 어기고 머슴의 아내가 된 것도, 이분이 나중에 귀하게 될 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곳에 주막을 차려 때를 기다려왔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이기축은 아내 덕분에 반정 세력에 끼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거사일이 되었습니다. 이기축은 선봉장이 되어 군대를 이끌고, 고양・양주 방면으로 통하는 창의문을 부수고 도성 안으로 쳐들어갔습니다. 그리하여 광해군을 몰아내고 반정에 성공했습니다. 이때가 1623년(광해군 15년) 3월 13일이었습니다.

    이귀, 김류, 이괄, 이기축 등은 정자 아래로 흐르는 모래내(홍제천) 맑은 물에 피 묻은 칼을 씻었습니다. 그리하여 이곳은 ‘세검정(洗劍亭)’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서울 이야기’ 이번 주에 마칩니다. 다음 주부터는 ‘우리음식 맛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 삽화=양동석
    ▲ 삽화=양동석
    장터·나루터 밑···길손이 쉬어가는 주막

    주막은 길거리에서 술과 밥을 팔면서 길손들에게 잠자리도 제공하던 집이다.

    주막은 시골은 물론 서울에도 많이 있었다. 주로 장터나 나루터, 고개 밑에 흔했는데, 19세기 중반이 지나서는 전국에 주막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10리나 20리 사이에 반드시 한두 개 이상의 주막이 있었다.

    주막에서는 음식값과 술값만 받고 잠은 그냥 재워 주었다. 한 방에 보통 대여섯 명이 잠을 자는데, 뜨끈뜨끈한 아랫목을 차지하는 것은 가장 먼저 도착한 길손이었다. 주막에는 특실이 있어 권세 있는 양반이 그 방을 독차지했다. 하지만 아무리 돈이 많아도 지체 낮은 사람은 마루방에서 다리도 뻗지 못하고 새우잠을 자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