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배 작가의 서울 이야기] 소공동의 심술통 머슴 귀신 (하)
신현배
기사입력 2010.05.08 23:39

"흉측한 귀신과 한집에서 살 순 없어…박쥐 끓인 물로 밥을 지어 먹입시다"

  • 신막점의 아내는 귀신을 위해 하루 세 번 상을 차리는 것이 몹시 귀찮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턴가 귀신에게 밥을 주지 않았습니다. 귀신을 위해 따로 상을 차리지 않고 자기네 식구들끼리만 밥을 먹었습니다. 그러자 귀신은 심술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것들이 나를 굶겨? 어디 두고 보자.’

    앙심을 품은 귀신은 밥솥에 거름을 붓고, 쌀독에 돌을 넣었습니다. 또한 바윗돌로 장독들을 깼습니다. 귀신의 행패를 견디다 못한 아내가 남편에게 하소연했습니다.

    “우리 이사 가요. 도저히 이 집에서 못 살겠어요.”

    “그럽시다. 더 이상 귀신에게 시달리며 살 수는 없으니까.”

    귀신은 두 사람이 하는 말을 엿들었습니다.

    “나를 버려두고 이사를 가겠다? 안 돼요! 주인어른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나도 가겠어요.”

  • 삽화 = 양동석
    ▲ 삽화 = 양동석
    두 사람은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귀신도 따라오겠다니 이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귀신아, 넌 도대체 어떻게 생겼니? 얼굴도 보여 주지 않으면서 속만 썩이는구나.”

    신막점이 푸념 조로 말하자 귀신이 낄낄거렸습니다.

    “나는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이에요. 궁금하다면 벽에다 얼굴을 그려 보여 주지요.”

    다음 날, 귀신은 약속을 지켰습니다. 집에 있는 모든 벽에 흉측한 자신의 얼굴을 그려 놓았던 것입니다. 신막점 부부는 그 모습이 너무 무서워 눈 뜨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잘 보았다. 그러니 어서 그림을 지우렴.”

    신막점이 중얼거리자, 귀신은 눈 깜짝할 사이에 그림을 깨끗이 지웠습니다.

    ‘아, 정말 끔찍하구나. 저런 흉측한 귀신과 한집에서 살다니.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어. 귀신을 없앨 방법을 찾아보자.’

    이튿날, 신막점은 용하기로 소문난 무당을 찾아가, 귀신에 대해 자세히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무당이 말했습니다.

    “박쥐를 끓인 물로 밥을 지어 먹이면 귀신은 그 자리에서 죽을 겁니다.”

    신막점은 무당이 가르쳐 준 대로 박쥐를 잡아서 물에 끓였습니다. 그리고 그 물로 밥을 지었습니다. 그때 마침 귀신은 밖으로 놀러 나가 집에 없었습니다.

    저녁때가 되자 귀신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신막점의 아내는 얼른 밥상을 차려 마당에 놓았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귀신은 배가 고파 허겁지겁 밥을 먹었습니다.

    “캐액! 캑! 어흐흐, 나 죽는다!.”

    귀신은 그 자리에서 죽어 버렸습니다. 그 뒤부터 신막점의 소공동 집에는 귀신의 목소리가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 원구단에서 치러진 환구대제.
    ▲ 원구단에서 치러진 환구대제.
    하늘의 아들이 제사 지내던 '원구단'

    원구단은 하늘의 아들인 천자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세운 제단이다. 오랜 옛날부터 임금들은 스스로 천자라 일컬으며 직접 하늘에 제사를 드려 왔다.

    하지만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조선이 황제국이 아니라 명나라의 제후국이고, 조선 왕은 천자가 아니라 제후국 왕이라며,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것을 폐지하고 말았다.

    1897년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바꾼 고종은 소공동에 원구단을 세웠다. 그리고는 그해 9월 17일 원구단에서 하늘에 제사를 드리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화강암으로 쌓은 3층의 원구단은 하늘을 상징하여 둥글게 만든 제단이다. 1899년에는 원구단 북쪽에 황궁우를 세웠는데, 지금은 이 황궁우 한 채와 북 모양의 석고 세 개, 석조 대문만이 조선호텔에 남아 있다. 1913년 일제에 의해 원구단이 헐리고 그 터에 조선호텔이 들어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