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여름이야. 세상 모든 것이 더위에 지쳐 늘어졌지. 저기 좀 봐. 왼쪽에 있는 소나무 말이야. 더워서 못 견디겠다는 듯 가지가 밑으로 축 처졌잖아. 아! 냉장고 속처럼 시원한 얼음 나라, 어디 없을까?
●짧게 자는 낮잠
없긴 왜 없어. 바로 여기지. 바위를 벽 삼아 지은 집이야. 소나무와 바위 사이로 한 줄기 바람이 불어. 오른쪽 위에 있는 댓잎 좀 봐. 흔들리고 있잖아. 낮잠 자기 딱 좋겠어. 정말 누가 길게 드러누웠네. 멋진 수염에 기품 있는 옷차림이야. 책상위에 쌓인 책 좀 봐. 공부를 많이 한 선비 같아. 어라? 책으로 베개까지 삼았네. 아하! 책이 이럴 때도 요긴하게 쓰이는구나. 그런데 베개가 너무 높아 보여. 좀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 마. 글을 읽다가 잠깐 눈을 붙인 것 같아. 왼쪽 다리를 오른쪽 무릎에 떡하니 걸쳤잖니. 이런 자세로는 오래 못 자. 잠든 게 아니라 살짝 눈만 감았는지도 모르지. 아마 저 선비도 곧 일어날 때가 되었을거야. 짧지만 꿀처럼 달콤한 잠이지. 세상만사 잊어버린 저 모습이 너무 부럽네.
●집에서도 기른 학
그림 아래쪽을 봐. 주인을 모시는 어린 하인이야. 눈동자가 착해 보여. 화로가 벌건 걸 보니 불을 지피고 있네. 잘 타라고 부채까지 들었잖아. 화로에 놓인 주전자에는 찻물이 끓고 있어. 주인이 곧 깨어날 때가 되었다는 뜻이지. -
그런데 하인이 뭘 쳐다보고 있어. 소나무 아래쪽에 뭔가 있네. 머리에 붉은 점이 콕 찍힌 학이야. 아주 한가로운 모습이지. 낮잠 자는 선비나 딴 곳을 보는 동자와 어우러져 여유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어.
그런데 학이 왜 집 근처에 있을까? 음, 옛날에는 학을 직접 집에서 길렀대. 중국의 임포(967~1028년)라는 사람이 산골에서 학을 자식처럼 기르며 살았거든. 그게 유행이 되어 선비들도 덩달아 학을 기르며 살았다지 뭐야.
●이재관의 삶
사실 잠든 모습은 좀 추하잖니. 그런데 ‘오수도’속 선비는 안 그래. 자면서도 전혀 품위를 잃지 않았어. 정말 그림 같은 그림이야.
이젠 그림만 봐도 화가의 성품을 대강 알 수 있겠지? 이 그림을 그린 선비는 굉장히 여유 있고 해맑은 영혼을 가졌을 거야. 바로 이재관(1783~1837년)이라는 화가지. 이재관은 어릴 때부터 매우 가난해서 그림을 그려서 생계를 꾸렸대. 솜씨는 제법 있었나 봐. 어떤 사람은 이재관의 그림을 보고 200년 동안 다시없는 솜씨라고 칭찬했지. 일본인들도 조선에 들르면 꼭 이재관의 그림을 구해 갔대.
이재관이 그린 ‘송하처사도’속 선비를 봐. 잠을 깬 다음 우리처럼 산책을 나왔나 봐. 조용히 생각에 잠긴 모습이 아주 여유로워 보여. 이런 선비들의 일상을 즐겨 그렸다는 건, 이재관의 성품도 그만큼 여리고 맑았다는 뜻이 아닐까?
[최석조 선생님의 옛 그림 산책] 이재관의 ‘오수도’
살랑살랑 바람에 선비님 눈이 '스르륵'
"개똥아, 낮잠이 참 꿀맛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