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깊은 한밤중이었습니다. 호젓한 밤길을, 중국 사신이 부지런히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기도 금주군의 한 마을(지금의 서울 봉천동) 근처에 왔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커다란 별 하나가 마을로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사신은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저 별은 문곡성 아닌가. 문곡성이 떨어지면 경사스러운 일이 있다는데.’
사신은 별이 떨어진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별이 떨어진 곳은 어느 기와집 지붕 위였습니다.
사신이 기와집 대문을 두드렸고, 한참만에 대문을 연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지나가는 길손인데, 이 집에서 경사스러운 일이 있었지요?”
“예, 제 자식 놈이 방금 태어났습니다만.”
“그랬었군. 지금 내가 하는 말을 귀담아들으시오. 그 아기는 이담에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오. 그러니까 각별히 신경 써서 잘 길러 주기 바라오.”
사신은 주인에게 신신당부를 하고는 마을을 떠났습니다.
이때가 바로 948년(정종 3년)의 일로, 그 아기가 바로 뒷날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게 되는 강감찬 장군입니다. 강감찬 장군의 고향 마을인 서울 봉천동 218번지 일대는, 강감찬 장군이 태어날 때 별이 떨어진 터라고 해서 ‘낙성대’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강감찬은 35세가 되어서야 과거에 장원 급제해 양주 목사에 임명되었습니다. -
당시 양주(현재 서울 일부) 땅은 호랑이가 많기로 유명했습니다. 호랑이들은 대낮에도 버젓이 마을에 나타나 가축을 잡아먹거나 사람을 해쳤습니다. 양주 사람들은 호랑이가 무서워 바깥나들이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강감찬은 백성의 이런 사정을 알고는 호랑이를 고을에서 없애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는 모든 군졸에게 도끼와 톱을 가지고 숲으로 모이게 했습니다.
“너희들은 이 숲에 있는 나무들을 모조리 베어라. 숲을 평지로 만들어야 한다.”
군졸들은 나무들을 베기 시작했고, 몇달 만에 고을을 둘러싼 숲을 평지로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 많던 호랑이가 자취를 감추어 버렸습니다.
강감찬은 나무를 태워 땅을 일구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평지에 기름진 논밭이 생겨났는데, 그는 그 논밭을 땅 없는 가난한 백성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지혜롭고 훌륭하신 분이야. 우리 고을에 명사또가 오셨네.”
백성은 모두 기뻐하며 강감찬을 우러러보았습니다. <하편에 계속>
강감찬 장군의 옛 집터에 세워진 '3층 석탑'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낙성대는 고려의 명장 강감찬이 태어난 곳이다. 그가 태어날 때 별이 떨어진 터라고 해서 ‘낙성대(落星垈)’라고 부른다. -
1031년 강감찬 장군이 세상을 떠난 뒤, 고향 마을 사람들은 강감찬의 옛 집터에 3층 석탑을 세웠다. 화강암으로 만든 탑으로 높이는 4.8미터다. 석탑에는 ‘강감찬 낙성대’라고 새겨 놓았다. 이 3층 석탑은 임진왜란 때 왜군들에 의해 파손되었는데, 서울시에서는 1964년 이 석탑을 보수하고, 1972년 지방 유형문화재로 지정했다. 그리고 1974년 강감찬 장군의 탄생지를 성역화하여 ‘낙성대 공원’을 조성하면서 낙성대 안의 사당인 안국사로 옮겨 왔다. 탑이 있던 생가 터는 ‘낙성대 유지’라 하여 따로 ‘낙성대 유허비’를 세우고 서울시 기념물 제3호로 지정했다. 해마다 10월에 관악구에서는 강감찬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낙성대 인헌제’를 열고 있다.
[신현배 작가의 서울 이야기] 강감찬 장군의 낙성대 (상)
"큰 별이 떨어지니 위인이 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