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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청학동에 있는 청량산에서 유치원생 20여명이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도 나누며 숲 속을 거닐었다. 지난주에는 참나무들이 우거진 산 기슭에서 어린이들이 모종삽으로 구덩이를 만들었다. 임종호(5)군은 주위에 있는 나뭇가지와 낙엽을 한 아름 들고와 구덩이를 덮었다. "아싸, 멧돼지 함정 완성!"이라고 외치며 신나는 표정을 지었다. 임세정(5) 양도 옆에서 낙엽과 나뭇가지들을 모아 어묵꼬치를 만들었다. 낙엽을 구겨 어묵을 만든 뒤 삐죽한 나뭇가지를 꼬치로 사용하니 제법 그럴듯한 어묵꼬치가 완성됐다. "히히, 너무 재밌다!"
이 어린이들은 지난해 8월 말부터 청량산 일대에서 국내 최초로 운영되고 있는 '숲유치원' 소속 원생들이다. 숲유치원은 일반 유치원과 다르게 유치원 건물이 따로 없다. 숲속 자연이 아이들이 뛰어놀고 쉬고 교육받는 공간이다.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유치원은 운영한다. 아이들은 비가 내리면 우비를 입고 천막속에서 생활하고, 폭설이 쏟아지면 두꺼운 옷을 껴입고 숲에 쌓인 눈으로 눈사람이나 눈집을 만들기도 한다. 아이들은 디지털 게임기 같은 전자기기 대신 생수가 든 배낭을 메고 등산화를 신은 채 숲유치원을 찾는다. -
아이들은 매주 월~금요일 오전 9시부터 낮 12시 30분까지 숲유치원에서 생활한다. 1주일에 한번씩 낙엽·꽃·새 등 숲 속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동식물을 이용해 체험 활동을 하거나 느낀 점을 서로 이야기한다. 계절에 따라 소재가 바뀐다. 겨울이면 야행성 동물이나 얼음, 여름이면 계곡·풀 같은 주제를 택한다. 만약 나뭇잎이 주제면 낙엽 모으기, 나뭇잎 모자 꾸미기 등 체험 활동을 진행한 다음 나뭇잎의 색깔에 대해 아이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김은숙(41) 원장은 "아이들의 정서를 따뜻하게 하고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데 숲은 가장 훌륭한 교육 장소"라면서 "일반 유치원과 달리 우리 유치원생들은 숲 속 소재로 직접 장난감을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숲 속의 다양한 식물을 배워나간다"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아이들이 점점 숲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웬만한 곤충이나 식물의 이름에 대해 꿰고 있다"고 했다.
숲유치원에 대한 학부모들의 반응도 좋은 편이다. 학부모 심은미(39)씨는 "자연에는 관심이 없던 아이가 길거리에 기어가는 작은 애벌레에도 걸음을 멈춰 관찰을 하는 등 호기심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처음에는 자녀들이 밖에서 생활해 안쓰러웠지만 날씨 변화에 대한 면역력도 생겨 웬만해서는 감기에 걸리지 않아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숲유치원은 인천대 숲유아교육연구소가 운영한다. 숲유아교육연구소는 지난해 3월 북부지방산림청과 어린이들의 녹색 교육을 위한 협약을 맺은 뒤 유치원을 열었다. 북부지방산림청에선 숲유치원을 위해 2억원을 들여 청량산 일대에 나비정원·동심의 숲·산책로·대피소 등을 조성했다. 숲유치원은 지난해 8월 말 만 3~5세의 어린이 13명을 모집해 개원했으며 추가 접수자를 받아 정원 20명을 채웠다. 김 원장은 "개원하기 전부터 자연스럽게 학부모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번져 원생들이 모집됐다"면서 "대기자가 많아 올해 신입생을 받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유치원 비용은 원생당 매달 25만원으로 일반 유치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교사 4명은 유치원 교사 자격증을 가진 숲유아교육연구소 연구원들로 유럽의 숲유치원을 견학하기도 했다.
독일에서 유학하고 국내에 처음으로 숲유치원을 소개한 인천대 숲유아교육연구소 이명환(59) 소장은 "일회성 숲 속 체험을 하는 유치원들은 있지만 건물없이 유아교육을 전공한 교사들이 매일반 형태로 가르치는 경우는 최초"라고 했다. 1950년대 중반 덴마크에서 시작된 숲유치원은 스위스·독일 등 유럽 전역에 확산됐으며 독일의 경우 1000여개의 숲유치원이 운영될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835-4255
'개원 7개월' 국내 최초 숲유치원
이신영 기자
foryou@chosun.com
숲속에 멧돼지 함정 만들고 나무와 얘기도…
청량산에서 20여명 수업… 관찰력과 호기심 '쑥쑥'
"숲은 훌륭한 교육 장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