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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철종 임금 때의 일입니다. 지금의 서울시 마포구 염리동에 있는 마을에 한 부자가 살았는데, 대대로 물려받은 땅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농사를 지어 창고에는 곡식이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부자는 하루도 두 다리 쭉 뻗고 편안히 잔 적이 없었습니다. 워낙 부잣집으로 소문나 걸핏하면 도둑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뭐라고? 또 새벽에 창고를 털렸다고?”
어느 날 아침, 부자는 머슴한테서 보고를 받고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예. 쌀이 열 가마나 없어졌습니다. 아무래도 도둑을 막기 위해 개를 길러야겠습니다.”
“뭐, 개를?”
“예. 주인 나리께서 허락하신다면 제가 진도에 가서 진돗개 한 마리를 구해 오겠습니다.”
“개가 있으면 도둑이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겠지? 좋아. 그렇게 하거라.”
부자는 좋은 개를 구해 오라며 머슴에게 많은 돈을 주었습니다. 이에 머슴은 진도로 가서 진돗개 한 마리를 사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으음, 털이 하얀 백구로구나. 체격이 좋고 잘생겼어. 아주 영리해 보이는걸.”
“이 녀석이 머리가 좋고 사냥을 잘한다는군요. 멧돼지 몇 마리는 가볍게 해치운답니다.”
“좋은 개를 구해 왔구나. 수고했다.”
부자는 만족스럽게 웃었습니다.
그날 밤이었습니다. 깊은 잠이 든 부자는 개 짖는 소리에 깨어났습니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창고 앞마당에 두 남자가 쓰러져 있었습니다. 집 안에 숨어들어 창고를 털러 가던 도둑이 백구에게 물어뜯긴 것입니다.
부자는 백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 뒤부터 부자의 집에는 도둑이 사라졌습니다. 다른 집엔 여전히 도둑이 들었지만, 그의 집엔 도둑이 얼씬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하, 우리 집에 복덩어리가 들어왔어. 백구야, 뭐가 먹고 싶니? 돼지 뼈를 구해다 줄까?”
부자는 백구를 자식처럼 정성스럽게 돌봐 주었습니다. 백구도 부자를 몹시 따랐습니다. 부자의 발소리만 들려도 어느새 주인을 알아보고, 꼬리를 흔들며 달려왔습니다.
마을 근처에는 쌍룡산이 있었습니다. 백구는 사냥을 하려고 혼자서 자주 쌍룡산을 찾아갔습니다. 백구는 토끼·멧돼지·여우 등 산짐승을 잡아 왔습니다. 어떤 날은 꿩이나 산비둘기 같은 날짐승을 물어 오기도 했습니다.
“백구가 사람보다 낫구나. 주인의 은혜에 보답하려고 산짐승을 잡아다 주니 말이야.”
부자는 백구가 기특하기만 했습니다. <하편에 계속> -
소금장수들이 살았던 염리동
옛날에 마포는 소금 배와 새우 배가 서해로부터 들어와 소금과 새우의 집산지로 이름 높았다. 지방에서 올라온 여러 젓갈과 소금을 보관하려면 옹기가 필요한데, 마포 근처에는 옹기를 굽는 마을인 동막이 있었다.
마포가 소금의 집산지이다 보니 그 근처인 염리동에는 큰 소금 창고가 있었고 소금장수들이 많이 살았다. ‘염리동(鹽里洞)’이라는 이름도 ‘소금 동네’, ‘소금장수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졌던 것이다.
이번에 소개한 이야기는 염리동에 있던 ‘개바위’ 마을에 얽힌 이야기다. 염리동의 쌍룡산은 숲이 울창하고 기괴한 바위들이 많았는데, 대표적인 바위가 쌍룡대와 개바위다. 특히 개바위는 마을을 지켜주는 바위로 유명했다.
[신현배 작가의 서울 이야기] 염리동 쌍룡산의 개바위 전설(상)
"도둑 잡는 백구, 사람보다 낫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