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학교에서… 춤도 배우고 숙제도 척척"
김명교 맛있는공부 기자 kmg8585@chosun.com
기사입력 2010.03.18 06:45

강남구 교육실험 '온종일 학교' 현장을 가다
원어민 영어·특별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
저녁 9시까지 아이 보호

  • 오후 3:00 덩덩궁따궁… 사물놀이 특별활동 시간
    ▲ 오후 3:00 덩덩궁따궁… 사물놀이 특별활동 시간
    맞벌이 부모들의 걱정은 다름 아닌 내 아이 교육 문제다. 학원이다, 보육 시설이다 아이를 맡기지만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런 맞벌이 가정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강남구가 소매를 걷어붙였다. 다름 아닌 '온종일 학교' 운영이다. 온종일 학교는 맞벌이 가정을 위해 저녁 9시까지 아이들을 보호하면서 저녁 식사를 제공하고 교과학습, 원어민 영어 수업, 현장 체험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현재 강남구의 14개 초등학교에서 온종일 학교를 운영 중이다. 지난 9일, 서울 논현초등학교를 찾아 온종일 학교를 경험해봤다.

    #오후 3:00 특별활동 시간 -사물놀이

    교실로 들어서자 열댓 명의 아이들이 사물놀이 수업을 준비 중이었다. 온돌 바닥에 자리 잡은 아이들은 제 몸집만 한 장구를 채로 두드리며 수업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드러냈다.

    "덩 덩 궁 따 궁." "덩 따따 궁 따 궁."

    정창현 사물놀이 강사가 선창하자 아이들은 질세라 입으로 가락을 읊었다. 장구를 치다가 손이 엉켜 나무 부딪히는 소리가 났지만 금세 가락을 쫓아갔다. 아이들이 수업에 빠져들 무렵, 조용히 교실을 둘러봤다. 교실은 따뜻한 느낌이었다. 한편에는 아이들이 특별활동 시간에 만든 그림이 걸려 있고 부엌, 침대방, 책상, 책꽂이가 갖춰져 있어 아담한 집을 연상시켰다. 온종일 학교는 전담 교사 1명과 보조 교사 1명이 20명의 아이들(초등 1·2·3학년)을 돌본다. 전담 교사는 생활 지도와 보육을 담당하고 보조 교사는 아이들의 먹을거리를 책임진다. 현재 서울 논현초는 올해 1월부터 17명의 아이가 온종일 학교에 참여하고 있다. 김윤숙 교장은 "우리 학교의 경우, 전체 학부모 중 55%가 맞벌이를 하고 있다. 보육과 교육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고 아이들의 안전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반응이 좋다"고 했다. 온종일 학교의 학비는 한 달에 12만원(교육비와 식비 포함)으로 저렴하다.

  • 오후 4:00 야호~ 간식시간
    ▲ 오후 4:00 야호~ 간식시간
    #오후 4:00 간식 시간

    사물놀이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은 "오늘 간식은 뭐에요?"를 연발했다. 이 날의 메뉴는 빵과 과일 주스였다. 한 줄로 서서 안명순 교사가 나눠주는 빵을 공손히 받아 들고는 책상에 붙여진 자신의 이름표 앞에 앉았다. 아이들의 간식과 저녁 식사는 월간 식단표에 따라 제공된다. 간식을 먹고 남은 시간 동안 아이들은 황규정 전담 교사의 지도에 따라 알림장을 꺼내 학교 숙제를 시작했다. 숙제가 없는 1학년생은 황 교사가 나눠준 활동지를 받아 들고 그림을 그렸다.

  • 오후 4:30 원어민 교사와 영어공부
    ▲ 오후 4:30 원어민 교사와 영어공부
    #오후 4:30 특별활동 시간 -원어민 영어

    "Hi, everyone." "Hello, teacher!"

    제임스 매켄지(James Mackenzie) 강사가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이들은 처음 보는 선생님을 낯설어했지만 새로 받은 책을 살펴보느라 분주했다. 이 날 배울 내용은 알파벳 엔(N)과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였다. 매켄지 강사는 교재를 펼치고 알파벳 엔을 발음하기 시작했다.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책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엔을 발음할 때 입 모양이 어떻게 되는지를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온종일 학교의 특별활동 시간은 전문 강사들이 도맡는다. 논현초의 경우, 한자, 사물놀이, 방송 댄스, 논술, 컴퓨터, 논리 수학 등 기존 방과후 학교에서 수업하는 강사들을 채용해 특별활동 프로그램을 알차게 구성했다. 3학년 김현진양은 "논리 수학이 가장 재미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다양한 수업을 들을 수 있어서 아주 좋다"고 말했다. 2학년 당가희양의 이야기다.

    "온종일 학교에 다니기 전에는 집에서 혼자 책을 보거나 숙제를 했어요. 외롭고 심심하기도 했는데 온종일 학교에 다니면서 친구들과 밥도 같이 먹고 재미있는 춤도 배울 수 있어서 좋아요."

    #오후 5:30 저녁 시간

    원어민 영어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기다리던 식사 시간이 돌아왔다. 메뉴는 북어국, 오이 무침, 멸치 볶음, 제육 볶음, 딸기였다. 아이들이 먹는 식단은 안명순 보조 교사가 직접 만들어 제공한다. 황규정 전담 교사는 아이들이 밥을 먹는 동안 '잘 먹고 있는지' '편식은 하지 않는지' 등을 꼼꼼히 살폈다. 밥을 다 먹은 아이들은 책꽂이로 달려가 보고 싶은 책을 꺼내 들었다. 오후 6시 30분 무렵이 되자, 하나 둘 아이를 데리러 학부모들이 교실로 들어섰다. 1학년 김소연양의 할머니 문영자(서울 강남구 논현동)씨는 "저렴한 비용으로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걱정하지 않고 일할 수 있어서 마음이 든든하다. 학부모 나덕용(43·서울 강남구 논현동)씨는 "집에 늦게 들어와 아이의 숙제를 봐주지 못해 마음이 쓰였는데 학교에서 과제를 살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또 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이 많아서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고 했다.

    "영어 교육의 경우, 많은 아이가 원어민 강사 한명과 수업하다 보니, 꼼꼼하게 피드백을 받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죠. 부족한 부분은 아이가 학년이 올라가면 보충해줄 생각입니다."

  • 오후 7:00 자유롭게 숙제하고 책읽는 시간 / 한준호 기자 gokorea21@chosun.com
    ▲ 오후 7:00 자유롭게 숙제하고 책읽는 시간 / 한준호 기자 gokorea21@chosun.com
    오후 7시가 되자, 교실에는 너댓명의 아이들만 남아 있었다. 황규정 전담 교사는 "오후 9시까지 아이들은 자유롭게 숙제, 문제집 풀기, 책읽기 등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전했다. 김윤숙 교장은 "앞으로 프로그램을 보강해 사교육을 받지 않고도 학교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