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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세운 사람은 태조 이성계입니다.
태조는 서울을 조선의 도읍지로 정하고 궁궐과 종묘사직, 관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북악산·인왕산·남산·낙산을 잇는 도성을 쌓았습니다.
태조는 나라의 기초를 세웠다고 생각하니 흐뭇하기만 했습니다.
‘이제 됐어. 도읍지를 정해 나라의 기초를 세웠으니 내 후손들이 이 나라를 잘 다스려 주겠지.’
그러나 태조는 이내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야. 아직 내가 죽어서 묻힐 묏자리를 찾지 못했잖아. 그런데 어찌 후손이 잘되기를 바라는가.’ -
태조는 풍수지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성을 쌓고 사대문을 낼 때, 남쪽에 있는 관악산에 불기운이 있다고 하자, 그것을 막을 비책으로 산 위와 남대문 앞에 연못을 팠습니다. 또한 불기운을 막으려면 남대문이 늘 깨어 있어야 한다며 ‘숭례문’이라고 쓴 현판을 세로로 달았습니다.
당시에 사람들은 후손들이 복을 받고 잘되려면 조상의 묏자리를 잘 써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용하다는 지관들을 불러 명당자리를 찾게 했습니다.
‘나도 이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묻힐 좋은 묏자리를 구해야만 해. 그러지 않으면 어렵게 세운 이 나라와 왕가가 번창하지 못하고 무너질 수도 있어.’
태조는 이런 생각을 하니 초조하고 근심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곧 용하다는 지관들을 불러 자신이 묻힐 명당자리를 찾게 했습니다.
지관들은 방방곡곡으로 흩어져 명장 자리를 구하러 돌아다녔습니다.
여러 달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지관이 명장 자리를 찾았다는 좋은 소식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여봐라, 오늘도 소식이 없느냐? 명당자리를 찾기가 어쩌면 이리도 어렵고 힘들단 말인가?”
태조는 답답한 마음에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이들만 믿고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여봐라, 전국에 있는 지관들은 모두 대궐로 오라는 방을 써 붙여라.”
태조의 명에 따라 전국에는 이런 내용의 방이 나붙었습니다.
‘풍수지리에 밝은 사람은 지체 말고 모두 대궐로 오라. 나라에서 아주 중요한 일을 맡길 것이다.’ <하편에 계속>
공동묘지로 유명한 명당 ‘망우동’
망우동은 서울 중랑구 망우동과 경기 구리시 교문동 경계에 있는 망우고개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망우고개는 해발 281인 망우산에 있다. 그 이름은 태조가 자신의 묏자리를 둘러보고 와 고갯마루에서 “아, 이제야 내 오랜 근심을 잊게 되었구나”라고 말했다 하여 ‘근심을 잊은 고개’, 즉 망우고개로 불렸다.
그 후 태조는 죽어 경기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검암산 밑 명당자리에 묻혀 ‘건원릉’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그 뒤 여덟 개의 능이 더 들어서 이 일대는 ‘동구릉’이라 불리었다. ‘동구릉’은 서울 도성 동쪽에 있는 아홉 개의 능이라는 뜻이다.
조선 시대에 망우리는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 망우리였고, 1963년 1월 1일 서울시에 편입됐다. 망우리 하면 누구나 공동묘지를 떠올릴 정도로 망우리 공동묘지는 유명하다. 1933년부터 묘지가 조성되어 1973년까지 약 161만㎡(49만 평)의 땅에 2만 9600기의 묘가 들어섰다.
중랑구청이 추진해 온 망우리 공동묘지의 공원화 사업으로 이곳은 ‘망우리묘지공원’으로 꾸며졌다. 이 묘지공원에는 현재 방정환·한용운·오세창·장덕수·지석영·박인환·조봉암 등 유명 인사들이 묻혀 있다.
[신현배 작가의 서울 이야기] 이성계가 근심 잊은 망우고개(상)
후손이 복받는 길… "내가 묻힐 명당 찾아라"
풍수지리에 관심 많았던 태조… 묏자리 잘 써야 번영한다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