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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경제를 잘 모르는데, 정책을 잘 모르는데 정책 결정은 해야 하는 지위에 있다. 문제는 학자들이 틀리고, 진보적 시민단체들이 틀리고, 진보적 언론이 틀리는 경우다. 최저임금 1만 원과 소득주도성장론도 이런 경우였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대통령과 국회의원, 정치 리더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20년 넘게 이른바 진보계열 정당에서 활동해온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이 최근 낸 책에서 한 말이다. 그가 내린 고민의 끝은 ‘일반 시민을 위한 한국경제 불평등 교과서’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 결과물이 ‘좋은 불평등’이라는 제목의 책이다.불평등인데 ‘좋다’고? 말장난은 아닐까. 최병천 소장은 문화일보와의 인터뷰(12월 21일 자 문화일보 참조)에서 이렇게 말했다.“경제학에서 불평등은 격차를 말한다. 임금 불평등은 임금 격차, 소득 불평등은 소득 격차, 자산 불평등은 자산 격차로 나타난다. 좋은 불평등은 좋은 원인 때문에 불평등이 증가한 경우를 말한다. 불평등이 증가하는 경우는 상층의 소득이 증가하거나, 하층이 떨어지는 경우, 중간층이 얇아지는 경우다. 1980년 이후부터 최근까지 한국의 임금 불평등 추이를 보면, 수출이 증가할 때 불평등이 증가하고, 수출이 감소할 때 불평등이 감소하는 패턴을 반복했다.”그렇다면 수출이 늘어나 불평등이 증가한다는 걸 무조건 나쁘게 봐야 할까. 반대로 수출이 감소한 결과 불평등이 줄었다면 이를 좋게 봐야 할까. 최 소장은 “좋은 불평등이란 표현은 결과만을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원인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고 했다.그는 책(54쪽)에서 이렇게 문제를 제기했다.“다음과 같은 3가지 의문점을 제공한다. 첫째, 왜 ‘1994년부터’ 불평등이 증가하게 됐을까? 이때는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전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둘째, 왜 글로벌 경제위기가 발생한 2008년 이후 한국경제 불평등은 축소된 것일까?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불평등이 증가한다는 우리의 상식이 틀렸던 것일까? 셋째, 왜 한국경제 불평등은 2015년을 정점으로 하락하는 중일까? 더구나 이런 흐름은 최근까지 지속 되는 중이다. 불평등을 하락하게 만들고 있는 힘의 근원은 무엇일까?”최 소장은 “많은 지식인의 오해와 달리 한국경제 불평등의 시작점은 1997년 외환위기가 아니다. 1994년부터 시작됐다. 이는 한국경제 불평등이 1997년 외환위기가 아닌 다른 요인에 의해 시작됐음을 의미한다”고 했다.최 소장에 따르면, 국내적 사건과 국제적 사건 3가지가 맞물려서 작동했다. 3가지 사건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1992년 1~2월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 1992년 8월 한·중 수교다.최 소장에 따르면, 한·중 수교가 체결되자 인건비 인상으로 수익성 압박을 받던 저숙련·저임금 기반의 한국 자본가들에게 중국 공산주의는 ‘자본의 해방구’가 된다. 저임금·저숙련 기반의 한국 자본가들은 일당 독재의 나라 중국 공산주의로 피난을 간다. 이유는 간단하다. ‘더 낮은 임금을 찾아서’다. 최 소장은 ‘자본의 피난’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가 1992년 직후에 나타났다고 지적했다.최 소장은 “한평생을 바쳐 민주화운동을 열심히 했던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 기간에는 불평등이 증가했다. 이명박 정부 직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2008~2010년 기간 동안 3년 연속으로 한국경제 불평등은 축소됐다”며 “이 수치만 보면 ‘민주화 세력’은 불평등을 증가시키고, ‘보수 세력’은 불평등을 축소시킨다고 주장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했다.이에 대해 그는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나쁜 평등’보다 ‘좋은 불평등’이 낫다”고 강조했다.“한국 경제사에서 실제로 있었던 좋은 불평등과 나쁜 평등이 어떤 경우였는지를 놓고 이야기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우리나라가 이른바 중국 수출로 대박이 날 때 한국의 불평등이 증가했다. 이 시기 한국의 대중국 수출 증가율은 연평균 30%에 달했다. 좋은 불평등의 대표적인 예다. 나쁜 평등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가 대표적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글로벌 교역량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 한국의 수출도 줄고, 고용과 투자도 줄고, 불평등도 줄었다. 나쁜 평등의 대표적인 사례다. 고용·성장·소득이 연동된 불평등의 증가, 고용·성장·소득이 무너지는 평등화의 과정, 이 중 선택하라면 당연히 나쁜 평등보다 좋은 불평등이 좋다.”그렇다면 ‘진보적 경제’가 불평등을 해소하지 못한 이유는 뭘까. 최 소장은 “불평등의 하층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들이 ‘노인’이다. 노인 소득을 올리는 정책을 사용할 때 불평등은 대체로 줄었다. 기초연금 인상과 노인 일자리가 대표적”이라며 이렇게 말했다.“문재인 정부가 2018년 추진한 소득주도성장론은 노동자를 위한 임금주도성장론의 성격이 짙다. 저임금 노동자가 주요 대상이었다. 그런데 소득주도성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채 고용 쇼크가 왔고, 고용 쇼크를 해결하고자 노인 관련 정책들이 단행됐다.”최 소장은 ‘좋은 불평등’도, ‘나쁜 평등’도 아닌 ‘좋은 평등’의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하면 중산층·중기업을 두텁게 육성하느냐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그가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내놓은 해법은 이렇다.“그중 하나의 해결책은 ‘규제 완화’다. 규제 완화를 통해 새로운 산업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두 번째는 ‘경제환경 변화에 올라타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배터리, 시스템반도체, 바이오 등을 받쳐줄 중견기업들을 많이 키워야 한다. 반도체 분야의 경우 미국의 대중국 견제 등으로 많은 기업들이 한국으로 유입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한 지정학적 상황을 잘 활용한다면 좋은 평등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글=백승구 조선에듀 기자
[시사상식] ‘좋은 불평등’과 ‘나쁜 평등’
백승구 조선에듀 기자
eaglebsk@chosun.com
●“규제 완화 통해 새로운 산업 많이 만들고 재생에너지·배터리·시스템반도체·바이오 등을 받쳐줄 중견기업 많이 키워야”
●최병천 소장의 글로벌 자본주의 변동으로 보는 ‘한국 불평등 30년’을 다룬 ‘좋은 불평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