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키울 땐 말이야”⋯ ‘육아 프로참견러’에 속 타는 엄마들
신혜민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7.03.02 16:12

-온라인상에서 육아 간섭 심해져
-선배 맘들의 조언 “참견과 조언, 구분해 들어라”

  • #. 13개월 된 아들을 키우는 김지현(가명·31)씨는 아이에게 가공 식품이나 시판된 과자 등은 절대 먹이지 않는다. 아토피를 앓는 아이의 증상이 더욱 심해질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시댁 식구들과 함께 외식에 나간 김씨는 시어머니께 혼쭐이 났다. 아이를 유난스럽게 키운다는 이유에서다. 김씨는 “이젠 일반식도 조금씩 먹어봐야 한다며 계속 지적하는 시어머니의 말씀에 기분이 상했다”며 “엄마로서 우리 아이에게 맞는 최선의 행동을 하는 것인데, 자꾸 육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 취급을 하니 속상하다”고 한숨지었다.

    #. 두 살배기 딸을 친정엄마께 맡기는 워킹맘 최재은(가명·35)씨는 요즘 사춘기 때보다 더한 잔소리를 듣고 있다. 최씨가 육아하는 모든 방식이 친정엄마의 성에 차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이 두상 관리를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두 달 넘게 듣고 있고, 유치가 나기 시작해 양치시키려는 것도 ‘아직은 안 해도 괜찮다’며 계속 말린다는 것이다. 최씨는 “육아를 도와주시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아이 육아를 마음대로 하려 하시니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 22개월 된 딸을 둔 주부 오단비(가명·37)씨는 최근 SNS 계정을 탈퇴할까 고민 중이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사사건건 육아에 대해 참견하는 이유에서다. 예컨대, ‘날도 추운데 아이 옷이 너무 얇다’, ‘사먹는 이유식보단 직접 만들어 먹여라’ 등이다. 오씨는 “아기 사진을 올리면 이것저것 육아에 대해 참견하는 사람들 때문에 부담스럽다”며 “하루하루 커가는 아이의 예쁜 모습을 사진에 담아 모아두기 위해 시작한 SNS가 남의 눈치를 봐야 하는 공간으로 변했다”고 토로했다.

    ◇“제발 믿고 지켜봐 주세요” 육아 참견에 상처받는 엄마들 많아

    육아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주변인들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젊은 엄마들이 늘고 있다. 최근 인터넷상에선 ‘육아 프로참견러(pro+참견+er; 육아 대해 이것저것 참견하며 지적하는 사람)’라는 신조어까지 생기며 이런 현상을 대변하고 있다. 유치원생 아들 둘을 키우는 워킹맘 장은희(가명·37)씨는 “주말 등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면 육아에 대한 조언을 넘어 간섭에 가까운 말을 듣는다”며 “자녀 교육에 대한 엄마·아빠의 가치관을 무시하고, 오직 본인들의 사고방식이 옳다며 ‘이같이 교육하라’고 말하는 데 이젠 지친다”고 했다.

    이런 상황은 가족을 넘어 낯선 사람들에게서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며칠 전 8개월 된 아이와 지하철을 타고 백화점 나들이를 가던 이지혜(가명·33)씨는 일면식도 없는 한 할머니께 지하철에서 내릴 때까지 잔소리를 들었다. 아이가 숨도 못 쉬게 유모차 커버를 씌우고 다닌다는 이유에서다. 

    “할머니께 미세먼지도 있고 지하철 안이 추운 것 같아 유모차 커버를 씌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러자 정색하시며 ‘계속 그러다가 네 딸 숨 막혀 죽는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화가 나는데, 이런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온라인상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평소 SNS를 통해 아이의 성장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주부 차승아(가명·32)씨는 댓글로 자신의 육아 방식이 잘못됐다는 지적을 받았다. 24개월 된 아기가 아직도 기저귀를 차고 다닌다며 엄마가 더 신경 쓰라는 내용이었다. 차씨는 “딸이 20개월부터 대소변을 가렸고, 혹시 몰라 외출할 때만 기저귀를 차는 것”이라며 “아이가 스트레스받지 않는 선에서 스스로 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건데, SNS라는 공개적인 공간에 이런 댓글이 달리니 모든 사람이 저를 잘못된 엄마라고 손가락질하는 것 같아 울컥했다”고 전했다. 

    아이와 함께 방송에 출연하는 연예인들도 마찬가지다. TV 육아 예능 프로그램의 시청자 게시판을 보면, ‘아이를 그렇게 키워선 안 된다’, ‘그런 행동은 하지 마라’ 등 그들의 육아 방식을 지적하는 글이 하루 수백개 이상 달린다. 해외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실제로 소문난 ‘딸 바보’로 잘 알려진 전직 영국 프로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David Beckham)은 과거 4살 난 막내딸에게 공갈젖꼭지를 물렸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공갈젖꼭지가 아이에게 언어 장애나 치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베컴은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왜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육아 방식을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며 분노하기도 했다. 

    ◇ 전문가 “타인의 의견일 뿐, 자책 말아야”

    전문가들은 핵가족화로 인한 부모의 육아 부담이 이런 현상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부모와 이웃, 지역사회가 함께 아이를 키웠던 과거와는 달리, 현재는 부모가 아이를 오롯이 맡으면서 그에 따른 양육 부담도 커지게 됐다는 것이다. 윤홍균 윤홍균정신건강의학과원장은 “예전엔 공동육아가 만연했지만, 현재는 가족이 분리돼 부모만이 모든 육아를 짊어진 상태”라며 “세대가 바뀌었다 해도 윗세대에게는 여전히 예전의 습관이 남아 있어 이런 부자연스러운 형태가 이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강주희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요즘 부모들은 아이를 1~2명 정도만 낳아 키우기 때문에 예전보다 훨씬 아이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며 “아이를 잘 키워내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자신이 올바른 육아 방식을 택하고 있는가에 대한 확신이 없어 모르는 사람의 말 한마디에도 쉽게 상처받는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스트레스를 앓는 부모에게 “자책하지 마라”고 조언한다. 주변인들의 조언이나 참견은 단지 타인의 의견일 뿐, 내가 잘못된 육아를 해서가 아니라는 걸 인지하라는 것이다. 윤 원장은 “타인의 의견이 절대적으로 옳은 말만은 아니다”라며 “최근 이런 이유로 공동육아를 하는 ‘친정엄마와 딸’ 또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서 갈등이 잦은데, 누구의 말이 정답이 아닌 서로 의견을 존중하는 태도가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선배 엄마들 역시 "조언은 귀담아 듣되, 간섭은 흘려 들으라"고 입을 모은다. 육아에는 정답이 없으니 몰랐던 부분은 조언으로 받아들여 참고하고, 사소한 참견은 흘려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아들을 둔 안지윤(가명·51)씨는 “아이를 키우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시시각각 발생한다”며 “이때마다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했다. 중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를 둔 워킹맘 전현숙(가명·49)씨는 “사소한 참견은 흘려 버려야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고 귀띔했다. 전 씨는 “아이마다 성향이 다르고, 이를 가장 잘 파악하는 건 바로 ‘엄마’”라며 “물론 다른 이들의 따끔한 충고와 조언은 귀담아들어야겠지만, 현재 아이의 상황을 잘 알지 못하고 말하는 참견에도 귀 기울인다면 엄마 자신만 피곤해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