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 과목 첫 해부터 복수정답 논란 불거진 수능 한국사
박기석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6.11.22 18:31
  • -   대한매일신보 1905년 11월 27일자에는 시일야방성대곡이 실렸다

    ‘한국사 14번 문항과 관련한 문제 제기에 대해 중대 사안으로 인식한다.’

    지난 17일 치러진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한국사 영역에서 복수정답 논란이 일자 이례적으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하루 만에 보도자료를 냈다. 지난 21일 오후 6시 마감된 수능 이의제기 게시판에서도 한국사 14번 문항과 관련한 게시글이 상당수를 차지했다. 이들은 백과사전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콘텐츠 등 다양한 근거 자료를 통해 복수정답이 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복수정답 가능성 제기된 한국사 14번 문항

    한국사 14번 문항은 ‘보기’의 선고문을 통해 해당 신문이 ‘대한매일신보’임을 알아차리고 대한매일신보에 대한 설명을 선택지에서 고르는 문제다. 평가원은 애초 정답을 ①번 ‘국채 보상 운동을 지원’으로 밝혔다.

    하지만 ⑤번 ‘시일야방성대곡을 게재’도 정답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황성신문이 시일야방성대곡을 1905년 11월 20일에 최초로 게재했지만 일주일 뒤 대한매일신보도 시일야방성대곡을 게재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의를 제기한 측에서는 백과사전과 국사편찬위원회가 운영하는 한국사콘텐츠 사이트 등 근거 자료를 제시했다(※참조·출처:한국언론진흥재단 자료 링크).

  • 전문가들은 복수정답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한 한국사 학술단체 관계자 A씨는 “대한매일신보에 시일야방성대곡이 게재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정규 지면이 아닌 호외(號外)에 실렸다거나, 해당 내용이 연구 가치가 높은 중요한 내용은 아니지만 이 문항은 복수정답이라고밖에 얘기할 수 없다”고 했다. A씨는 “시일야방성대곡 게재가 교과서에 실렸느냐, 교과서에 실리지 않은 내용이 문제 출제와 채점에 영향을 주느냐 등에 대한 논란이 본질이다. 이 논란은 역사학적 논란이 아니라 교육학적인 논란”이라고 했다.

    비슷한 전례가 있다는 점도 평가원이 복수정답을 인정하리라는 근거 중 하나다. 2014학년도 수능 세계지리 8번 문항과 관련해 평가원은 수험생과 법정 다툼을 벌인 끝에 ‘문제 출제가 완벽하지 않았다’며 복수정답을 인정했다. 교과서에 실리지 않았지만 실제 통계와 부합하는 선택지를 정답으로 인정한 것이다.

    서울의 한 일반고 역사교사 B씨도 “⑤번 선택지를 오답으로 처리하려면 ‘최초로 게재하였다’라거나 문제에 ‘가장 옳은 것은’ 등으로 정답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게 출제했어야 한다”고 했다.

    지방 국립대 역사교육과 C 교수는 “평가원이 이의 신청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관련 학회에 자문을 요청해 의견을 수렴하는 중으로 알고 있다”며 “이것만으로도 평가원이 복수정답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했다.

    한 대입 전문교육업체에 따르면 이 문항의 정답률은 약 40%다. 복수정답 논란이 이는 ⑤번까지 정답으로 인정한다면 전체 수험생의 약 20%가 추가 점수를 받게 된다.

    ◇출제 논란 줄이기 위한 보완책 필요

    한국사 영역은 수능 응시생 모두가 시험을 보는 필수 과목으로 올해 처음 지정됐다. 필수 과목 지정 첫 해부터 출제 논란을 일으킨 교육부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셈이다.

    이 때문에 출제 논란을 줄이기 위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성호 하늘교육종로학원 대표는 “올해 처음 필수로 지정된 한국사 영역은 수험생 부담을 줄이기 위해, 그간 모의고사에서 전체 응시생의 70% 가까이가 3~4등급 이상이 되도록 쉽게 출제됐다. 깊게 사고하지 않고 단편적인 사실을 알고 있는지만 확인하다 보니 출제진들이 아주 단순한 문제 출제 방식에 익숙해져 문제를 다방면에서 깊이 있게 검토하지 않고 간과한 것 같다. 이 같은 오류를 걸러낼 수 있는 시스템이나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했다. 

    한편 평가원은 오는 24일까지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이의심사실무위원회’를 열어 이의 신청 내용을 심사한다. 이미 평가원은 논란이 일어난 지난 18일 이례적으로 설명자료를 내어 ‘한국사 14번 문항과 관련한 문제 제기를 중대 사안으로 인식한다’고 밝혔다. 21일 열린 총리·부총리 협의회에서도 한국사 14번 문항 관련 심사결과를 26~28일 사이에 발표하기로 해 최종 정답 발표는 예정(28일 오후 5시)보다 당겨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