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통령', '뽀통령' 등장… 키즈 콘텐츠 확산이 대중문화까지 영향 미쳐
박기석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6.11.09 13:04
  • 대전에 사는 직장인 황수일(가명·40)씨는 4살배기 둘째 아들과 함께 있을 때 주로 스마트폰을 건네준다. 아이는 만화영화나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 등 자기가 보고 싶은 영상을 스스로 검색해 척척 튼다. 찰흙이나 장난감을 이용해 놀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토이몬스터’도 즐겨 보는 영상 중 하나다. 아이는 금세 화면에 집중하고 아빠는 모처럼 휴식 시간을 갖는다. 황씨는 “아이가 보고 싶어하는 동영상을 종종 유료 결제하는 경우도 있다”며 “직장 동료들도 스마트폰이나 IPTV 등에서 아이를 위해 결제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고 했다.

    최근 대중문화 콘텐츠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건 바로 키즈 콘텐츠다. 뽀로로 등 애니메이션부터 장난감 소개 영상, 단순한 리듬·멜로디의 동요 등은 TV, 유튜브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영향력을 높여가고 있다.

    ◇TV·온라인 어디서나 볼 수 있어

    국내 IPTV 점유율 1위인 KT 올레 TV가 조사한 가입가구 650여만명의 상반기 VOD(주문형 비디오) 이용 점유율에서 ‘키즈·애니메이션’ 콘텐츠는 34.4%로 2위를 차지했다. 1위인 ‘TV 다시보기’의 점유율 37.6%에 거의 육박하는 수치다. 성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나머지 ▲음악(8.4%) ▲영화(7.5%) ▲스포츠(1.4%) ▲성인(1.2%) 콘텐츠 점유율보다 4배, 많게는 30배 이상을 차지한다.

    유튜브나 포털사이트 동영상 게시판 등 온라인에서도 키즈 콘텐츠의 인기는 상당하다. 유튜브 통계 분석 사이트 소셜블레이드에 따르면 9일 기준 국내 상위 10위 유튜버(콘텐츠 제공자) 중 ‘핑크퐁(7위)’, ‘뽀로로(9위)’가 포함돼 있다. 키즈 콘텐츠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꽤나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나머지 10위 안에는 ‘KBS World TV(4위)’를 제외하고 모두 K-POP과 관련한 유튜버들이 이름을 올렸다. K-POP 관련 콘텐츠는 전 세계에서 소비하기 때문에 시청자층이 굉장히 폭넓다.

    이 때문에 기존의 문화 사업자들은 키즈 콘텐츠를 잡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KT는 슈렉, 쿵푸팬더, 드래곤길들이기 등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드림웍스의 콘텐츠를 지난 5월부터 독점으로 내보내고 있다. 지난 7월에는 호비 캐릭터로 유명한 아이챌린지 프로그램도 론칭했다.

    김치호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장은 “과거에도 TV를 통해 다양한 애니메이션이나 교육용 콘텐츠를 소비하던 트렌드가 있었으나 유튜브 등 1인미디어 콘텐츠가 등장하고 IPTV 시청자의 VOD 이용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키즈 콘텐츠가 확산됐다”며 “앞으로도 콘텐츠가 디지털 매체를 통해 전파, 소비되는 트렌드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놀아주는 법 모르는 부모, ‘조카 바보’가 콘텐츠 확산에 영향줘

    키즈 콘텐츠의 인기는 아이와 놀아주는 방법을 잘 모르는 부모와도 관련이 깊다. 직장인 오상천(가명·35·서울 성북구 성북동)씨는 “주말에 피곤한데 세 살 아들이 놀아달라고 하면 자주 스마트폰으로 아이가 좋아하는 동영상을 틀어준다”며 “외출했을 때 아이가 갑자기 칭얼대면 주변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스마트폰을 넘겨준다”고 했다.

    김단비(가명·35·서울 서초구 반포동)씨도 네 살 짜리 딸과 잘 놀아주는 법을 몰라 키즈 콘텐츠에 주로 의존하는 편이다. 김씨는 “또래 친척 중 가장 먼저 아이를 낳아서 주변에 육아 관련 질문을 할 데가 없다. 아이가 좋아하는 영상을 함께 보고 이와 관련한 얘기를 하는 정도로 놀아주고 있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대통령만큼 영향력이 크다고 해 ‘캐통령’이라는 별명이 붙은 캐리(강혜진·27)는 이 현상을 잘 읽어낸 셈이다.

    “요새 아이들은 형제자매가 거의 없잖아요. 맞벌이하는 부모도 많아서 함께 놀 친구가 부족하다고 생각했죠. 이 때문에 친근하게 친구처럼 다가가는 데 초점을 둔 콘텐츠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콘텐츠가 주로 디지털로 유통되기 때문에 분량도 10분 내외로 비교적 짧게 구성했어요.”

    경제력이 있으면서 미혼인 삼촌과 이모, 고모 등 이른바 ‘조카 바보’의 영향도 크다. 장효진(가명·32·경기 수원시 매탄동)씨는 5살 조카에게 돈을 아끼지 않는다. 장씨는 “조카를 보기 위해 근처에 사는 언니 집을 종종 찾아간다”며 “아이와 놀아주다가 스마트폰을 통해 좋아하는 만화영화를 보여주기 위해 유료 결제를 자주 하는데, 언니가 공짜 영상만 보여줘도 되는데 괜히 낭비하는 것 아니냐고 타박하는 일도 있었다”고 했다.

    키즈 콘텐츠는 앞으로도 한동안 영향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김치호 교수는 “디지털 매체에 익숙한 영유아 층까지 키즈 콘텐츠의 확산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거 아이들이 키즈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플랫폼은 TV나 극장 정도로 한정적이었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유통됩니다. 어린 나이에도 디지털 기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는 자연스럽게 문화 콘텐츠의 주요 소비층이 됐습니다. 상황에 따라 1차, 2차 소비자가 될 수 있는 부모들도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서 키즈 콘텐츠를 이용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영향력을 높여갈 거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아이들이 건전하게 콘텐츠를 소비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부모가 도와주고 키즈 콘텐츠의 유해성이나 중독 등 부정적인 요소를 건전하게 규제하는 정부의 역할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