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하십니까]유치원 고정행사로 자리 잡은 핼러윈 데이
방종임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6.10.31 16:22
  • #여섯 살 난 딸을 둔 워킹맘 이진주(34)씨는 지난주 초 유아 영어학원에서 가정통신문을 받은 다음, 한 주 내내 동분서주했다. 핼러윈 데이를 맞아 옷과 장신구를 챙겨오라는 내용이었다. 회사일로 꼼꼼하게 이벤트 용품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던 그는 온라인 마켓을 통해 핼러윈 상품 패키지를 사느라 10만원을 지출했다.
    #일곱살, 여섯살 연년생 아들을 둔 전업주부 이태은(44)씨는 이달 초, 해외 직구를 통해 아이들의 핼러윈 의상을 일찍부터 주문했다. 지난해 별다른 생각 없이 집에 있는 소품으로 대충 유치원에 보냈다가 화려하게 치장하고 온 반 친구들에게 기죽어서 첫째 아이가 돌아온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 하루 동안이지만, 아이가 돋보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여러 쇼핑몰 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특이한 아이템을 준비했다.
    10월 31일, 핼러윈 데이(Halloween day)를 맞아 전국 유치원이 들썩이고 있다. 기성세대들에겐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외국 축제이지만, 몇 년 전부터 젊은 세대는 물론이고 아이들에게까지 핼러윈 데이 문화가 시나브로 침투했다. 조기 영어교육 열풍이 불고, 해외여행을 경험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유치원에서 연례행사로 서양의 명절인 핼러윈을 챙기는 것이다. 이제는 유치원을 넘어 일선 초등학교와 어린이집에까지 확산하는 추세다.
    핼러윈은 ‘만성절 전야제(All Hallows'Eve)’를 줄인 말로, 유령에게 한 해를 무탈하게 해달라고 제사를 지내는 고대 켈트족의 전통 축제에서 유래했다. 악령이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자신도 유령이나 괴물 등으로 변장하던 풍습이 남았다. 이날이 되면 미국의 각 가정에서는 호박에 눈ㆍ코ㆍ입을 파서 등을 만들고, 검은 고양이나 거미 같은 핼러윈을 상징하는 여러 가지 장식물로 집을 꾸몄다. 또한 아이들은 괴물이나 마녀, 유령으로 분장한 채 이웃집을 찾아다니면서 사탕과, 초콜릿 등을 얻었다. 미국에서는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들도 즐기는 대중적인 명절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기념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유학을 다녀온 젊은 세대를 시작으로 점점 확산해, 미국의 문화를 체험하는 것을 강조하는 유아 영어 학원 등에서 빠르게 받아들였다. 그 후 전국 유치원으로 퍼져 나가, 이제 유아를 자녀로 둔 가정에서는 핼러윈 분장과 소품을 챙기는 것이 더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며칠 전부터 같은 반 아이와 의상이 겹치면 안 되는 탓에 엄마들의 채팅방에서는 어떤 아이템이나 의상을 두고 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엄마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의상과 소품을 공동구매하기도 한다.
    아이를 위해 핼러윈 데이를 챙기는 부모의 입장은 극명히 엇갈린다. 먼저 명절도 수입해야 하느냐는 불편한 시선이다. 대개 핼러윈 데이 이벤트가 문화적 이해 없이 단순히 흥미 위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최진아(50)씨는 “오늘 아침에 핼러윈 복장을 하고 유치원에 가는 딸에게 핼러윈의 의미를 물으니 전혀 모르더라”며 “우리나라의 전통 명절은 무관심하고 해외의 명절이나 축제만 즐기는 것이 한편으로는 씁쓸하다”고 말했다. 기존의 ‘00데이’처럼 지나친 마케팅 수단으로 변질했다는 비판도 있다. 유통업계에서는 핼러윈을 기념해 관련 상품을 쏟아내고 있고, 해당 매출 또한 상승세다. 핼러윈 의상이나 소품은 적게는 몇만 원에서 많게는 몇 십만원에 달한다. 워킹맘 정아름(40)씨는 “아이가 유치원에서 기죽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거금을 들여서 매년 의상을 사고 있지만 1년에 단 한 번 있는 외국 행사를 위해 이렇게 돈을 써야 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핼러윈을 즐기는데 이유가 필요하냐는 반박도 나온다. 현대의 핼러윈은 종교적 색채나 의미가 많이 희석됐기 때문에, 축제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의견이다. 여섯 살 난 딸을 둔 이은아(36)씨는 “크리스마스처럼 명절로서 보다는 재미있게 즐기는 축제로 아이들에게 자리 잡았다”며 “색다른 추억을 쌓도록 오늘 저녁에 아이 친구들을 불러서 파티를 열어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사립 유치원을 운영하는 원장 최은아(48)씨는 “파티를 준비하려면 이것저것 손이 많이 가지만, 일단 아이들의 호응이 좋아서 그냥 넘기기가 어렵다”며 “다른 유치원과 비교하며 파티에 대해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학부모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