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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수로서 마음껏 노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의 사랑 덕분이었어요.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 덕분에 어디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할 수 있었죠. 저도 아이들에게 그런 든든한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
90년대 화려한 스타였던 가수 양수경 씨가 17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설 용기를 낼 수 있었던 데에는 아이들의 영향이 컸다. 아이들에게 멋지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복귀에 대해서 그는 “’가수 양수경’으로 또 ‘엄마 양수경’으로 더 떳떳해지기 위한 선택”이라며 “최선을 다해 제 일을 하듯 아이들도 맡은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세 아이의 엄마.
아들 둘에 딸 하나. 양 씨는 자녀가 셋이다. 그중 그가 낳은 아이는 막내 준호(16)군뿐. 동생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아들 하늘(20)씨와 딸 채영(18)양을 입양했다.
“동생과 이별을 했어요. 늘 함께 생활하며 제게 분신 같은 존재였죠. 동생의 아이가 두 명이 있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제가 키우다시피 했어요. 하루아침에 엄마가 없어진 아이들에게 저보다 엄마 역할을 더 잘해줄 사람이 있을까를 생각했고, 그렇게 제가 엄마가 되기로 했죠. 당시 제가 아버지를 여의고 극심한 공황장애를 앓아 한국을 떠나 하와이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바로 귀국해서 아이들을 입양시켰죠. 동생이 선물로 애들 둘을 남겨주고 갔다고 생각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도 세상을 떠났다.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아이들 덕분이었다. 그는 “만약 그때 세상에 저와 제가 낳은 아이 단둘만 있었다면 힘들어서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며 “저를 챙기고 걱정하는 아이들이 있었기에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고 했던가. 슬퍼할 겨를 없이, 아이들부터 챙겼다.
“저와 남편이 알려진 사람이다 보니 어디 가서도 알아보고 수군수군했어요. 악성 댓글도 많았죠. 그런 말에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제가 의연해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아이들이 사춘기였는데, 제가 무너지면 아이들은 더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아 정신을 바짝 차렸습니다.”
그 이후 한동안 가수 양수경이나 여자 양수경이 아닌 엄마 양수경으로만 살았다. 아이들 생활을 챙기고 교육 시키느라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덕분에 아이들은 상처에서 벗어나 그 누구보다도 건강하고 밝게 자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시련 덕분에 아이들과 더 돈독하게 잘 지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살았던 아이들도 더 강해졌죠. 시련 덕분에 아이들도 저도 더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
◇열혈 엄마 양수경.
아이들이 리라 초등학교 재학 무렵, 양씨는 누구보다 열혈 엄마였다. 학교에서 하는 모든 행사에 참여했고, 학부모회장까지 맡았다. 방과 후에도 아이들에게 배우고 싶은 모든 예체능 활동을 배우게 하며 뒷바라지를 했다. 그가 열성적으로 변한 데에는 계기가 있었다. 막내 준호군이 하와이에서 생활하다가 초등 4학년에 편입했을 때였다. 내성적이었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학교에서 돌아와서는 전교회장이 되고 싶다고 했다. 아이가 하고 싶다는 것은 끝까지 지원해주자는 원칙을 세웠던 그는 다음날부터 계획을 세워 선거유세를 열성적으로 도왔다. 결국 준호군은 전교회장에 당선됐다.
“저는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에요. 결혼과 동시에 가수 활동을 접은 다음부터는 주부로서 최선을 다했어요. 임신했을 때부터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태교를 했죠. 아이가 태어나서는 책을 열성적으로 읽어줬어요. 유치원에 보낼 때에는 예비리스트를 정해서 수업을 청강하고 선택할 정도였어요. 학교에 입학하고부터는 학부모로서 최선을 다했죠. 아이에게 인스턴트 음식을 먹이게 하고 싶지 않아서 쉬는 시간에 들통으로 도시락을 싸서 나르기도 했고, 주변 엄마들과 교육정보를 알아보느라 동분서주했죠. 저에게 있던 모든 에너지를 아이에게 쏟았던 것 같아요.”
공부도 열심히 시켰다. 한 단어라도 더 익히게 하기 위해서 온 방을 포스트잇으로 도배할 정도였다. 시험 전에는 예상문제까지 뽑아서 아이에게 공부시켰다. 웬만한 사교육도 모두 섭렵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그가 원하는 대로 잘 따라왔다. 둘째는 학교에서 전교회장을 할 만큼 인기가 많았고, 셋째는 늘 우등생이었다.
그가 열혈 엄마가 된 데에는 아이들이 기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사고를 겪었기에 누구보다도 아이들이 풀이 죽지 않기를 바랐다.
“한번은 막내가 지원한 중학교에 떨어져, 학교에 가서 항의한 적도 있어요. 초등 4학년 때 전학을 와서 그해 성적이 다른 학년에 비해 좋지 못했는데, 그것 때문에 아이가 떨어졌더라고요. 학교에 가서 점점 나아지는 성적을 가리키며 아이의 가능성을 봐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물론 제가 그렇게 항의한다고 이미 결정된 사항이 번복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죠. 그러나 이런 저의 행동을 통해 아이가 자신감을 잃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던 거예요. 저는 늘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이들에게 ‘최고’라고 말해줍니다. ”
지금 아이들은 미국에서 유학 중이다. 양씨가 가수 복귀를 결심하고 더는 예전처럼 뒷바라지할 수 없기에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다. 아이들과 떨어져 살면서 성적에 대한 욕심도 점차 버렸다.
“제가 옆에서 챙겨주지 못하기 때문에, 늘 미안한 마음뿐이에요. 예전에 곁에서 챙겨주고 해준 게 많을 때는 아이들에게 집착하고 욕심도 냈는데, 지금은 전혀 그럴 수가 없죠. 마음을 내려놓자 아이들이 즐겁게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그저 고마워지더라고요. 사춘기를 무사히 잘 넘겨준 것도 고맙고요. 지금은 아이들에게 성적을 전혀 물어보지 않아요. 어떤 대학을 가든 어떤 일을 하든 스스로 행복하기만을 응원해주고 싶습니다. ”
그는 하루에 10번 이상 아이들과 영상통화를 한다. 비록 거리상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아이들이 늘 그에게는 1순위다. 사랑한다는 말도 자주 한다.
“얼마 전에 아이들에게 제가 어떤 엄마냐고 물어봤어요. 늘 뒤에서 든든하게 지켜주는 엄마라고 하더라고요. 예전에는 앞에서 이끌어주는 엄마였다면, 지금은 뒤에서 지켜보고 응원해주는 엄마인 것 같아요.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 본인 인생은 스스로 가야 하는 거잖아요. 예전에 열성적으로 뒷바라지하던 때를 절대 후회하지는 않지만, 욕심을 내려놓은 지금이 아이들도 저도 훨씬 행복한 것 같아요. “
열혈 엄마, 가수 양수경 “세 아이의 든든한 버팀목 되고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