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학교 현장] 일방향 수업 사라졌다더니, 실상은 ‘질문 없는 교실’
김재현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6.08.1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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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차 고교 국어 교사 김지연(31·가명)씨는 항상 종(鐘) 치기 2~3분 전 수업을 마무리한다. 학생들의 질문을 받으며 그날의 수업 내용을 최종적으로 정리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여러분, 오늘 수업 내용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나요?”

    하지만 김씨의 의도와 달리, 교실은 침묵한다. 책상에 머리를 콕 박고 있거나, 김 교사의 눈을 필사적으로 피하려는 학생들이 수두룩하다. 김씨는 “교사 생활 5년간 수업이 끝날 때쯤 학생들에게 질문을 요구했는데, 실제 수업 내용과 관련된 질문을 받은 게 열 손가락에 꼽힐 정도”라며 “얼굴·성격 다 다른 학생들이 이 시간만 되면 고개 푹 숙이고 교사의 시선을 피하는 판박이 행동을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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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상위권 성적의 일반고 2학년생 송주호(17·가명)군은 호기심이 많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수업 시간에도 마찬가지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곧바로 손을 들고 질문하는 편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송군의 질문 횟수는 급격히 줄고 있다. 그는 “호기심이 줄어든 게 아니라 질문할 ‘틈’이 없어서”라고 했다.

    “대부분의 쌤(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하는 얘기가 있어요. ‘시간 없다, 빨리 진도 나가야 한다’고요. 그러곤 학생들에게 프린트물 나눠주고, 칠판이나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준비한 수업 내용을 일방적으로 전달해요. 만약 수업 도중 궁금한 게 생겨 질문하면, 쌤은 ‘쉬는 시간에 얘기하자’고 하세요.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업 시간에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질문은 나중에”, 진도 나가기도 벅차
    “수업 길어진다” 다른 친구들 눈치와 핀잔에 궁금해도 못 물어
    “질문 받아요” 얼굴없는 온라인선 ‘질문 호객 현상’ 생겨
     

    학교 수업 현장에서 ‘물음표’가 종적을 감추고 있다. 교사가 틈날 때마다 던지던 질문이 현저히 줄고, 수업 내용에 대한 학생들의 궁금증도 사라졌다. 교육계에선 “이젠 ‘질문 없는 교실’이 확산하는 수준을 넘어 고착화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교실에서 질문이 사라진 대표적인 이유로는 ‘일방통행식 수업’이 꼽힌다.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은 “한국 교실에선 50분 내내 수업을 이끌며 정답만 가르치는 주입식 교육 형태로 진행된다”며 “학생이 스스로 답을 찾는 과정 없이, 교사가 정답을 손쉽게 알려주는 데 학생들이 왜 질문을 하겠는가”라고 했다.

    진도 빼기에 급급한 현실도 ‘질문 없는 교실’을 만든 원인으로 지목된다. 경기도 A고교의 한 수학 교사는 “한 학기 동안 교과서 내용을 모두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질문을 받을 시간이 사실상 부족하다. 특히 고교의 경우엔 3학년 때 수능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2학년 때부터 진도만 나가는 데도 벅차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소통할 시간이 아예 없을 정도”라고 했다.

    학생 대부분은 ‘질문할 수 없는 교실 분위기’를 결정적인 이유로 꼽는다. 경기도 B고교 2학년 박지우(17·가명)양은 “몇몇 선생님들은 수업이 끝나기 전 학생들에게 질문을 요구한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 시간에 대부분 책상을 정리하며 끝나길 바란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궁금한 점을 물을 수 있나. 차라리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쉬는 시간에 묻는 게 더 낫다”고 했다.

    서울 C고교 1학년 이지수(16·가명)양은 “수업 도중 정말 이해가 안 돼서 선생님께 그 내용에 대해 여쭤본 적이 있는데, 선생님이 ‘그것도 모르느냐’는 뉘앙스로 얘기하고, 학생들도 비아냥대는 분위기였다”며 “그런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후부턴 질문할 용기가 좀처럼 나지 않더라”고 했다.

    서울 D고교 2학년 이승민(가명·17)양은 “학생들의 질문 수준은 아는 것을 선생님께 다시 확인하거나, 전혀 모르는 것에 대한 정답을 요구하는 정도”라며 “질문의 질이 떨어지거나 개인적인 질문만 할 뿐인데, 굳이 수업 시간에 질문해서 선생님이나 학생들의 핀잔을 들을 필요가 있을까”라고 했다.

    ‘질문 없는 교실’은 ‘질문 없는 사회’로 진화하고 있다. 대학과 기업을 모두 경험한 서울 A대학의 한 초빙교수는 “학교 현장뿐 아니라 대학이나 기업도 마찬가지”라며 “질문을 유도해내지 않으면, 수업 시간이나 프로젝트 내내 학생과 후배의 질문은 없다. 그들은 알려주는 것을 받아 적고, 시키는 것만 수동적으로 한다”고 했다.

    한국 사회의 ‘질문 실종’이 심각해지자, 급기야 온라인에선 역설적인 현상도 생겨나고 있다. 특히 수험생들이 자주 찾는 커뮤니티에선 “저 명문대생인데 질문받아요” “국어 고득점인데, 질문받아요” “수학 확통(확률과통계)과 기벡(기하와벡터) 마스터했는데 질문받아요”와 같은 ‘질문 호객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궁금증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를 해소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먼저 다가서는 사례가 줄을 잇는 것이다.

    교육 전문가들은 “‘질문 없는 교실’의 고착화가 심해질수록, 한국의 미래도 점점 더 어두워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혜정 소장은 “정답만 가르치는 한국 교육이 ‘질문 없는 교실’을 만들었다. 질문이 사라지면서, 학생들도 생각하는 힘을 잃었다. 교사의 생각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사고만 하고 있다. 질문 없는 교실은 창의적 인재 양성을 가로막는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봉환 숙명여대 교육학부 교수는 “질문은 비판적 사고와 창의적 사고를 기르는 원천이다. 비판적 사고와 창의적 사고는 창의적인 인재로 거듭나기 위한 중요한 능력이다. 질문의 힘이 그만큼 대단한 것이다. 창의 인재의 싹을 틔우기 위해선 반드시 ‘질문 있는 교실’이 만들어져야 한다. 따라서 교사 중심의 일방적인 수업 환경을 학생들의 동기 유발하는 형태 혹은 토론 방식으로 전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수업 형태가 안착된다면 학생들 내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질문할 수 없는 풍토도 자연스럽게 개선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