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만은 정말 ‘학습의 적(敵)’일까? 많은 부모가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오해다. 정소정 건국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대한비만학회 소아청소년위원회 이사)는 “비만인 소아·청소년의 학업성취도가 낮다는 연구 결과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만이 학업성취도를 떨어뜨리는 원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학계에서도 (비만과 학업성취도 저하는) ‘무관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비만이 아이들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다. 비만일수록 활동량이 적어지고, 그만큼 체지방이 쌓일 가능성도 커진다. 비만인 청소년 열 명 중 여덟 명은 성인이 돼서도 비만이고, 당뇨나 고혈압, 심혈관질환 같은 성인병을 앓을 위험도 높아진다. 정 교수가 대한비만학회에서 소아·청소년 위한 ‘FUN&RUN 건강 캠프’를 여는 등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 교수는 “소아·청소년 비만 문제는 아이들에게 ‘균형’을 찾아준다는 의미로 접근해야 한다. 빨리 학원 가야 한다며 아무렇게나 먹이고, 체육 시간을 빼서 공부 시키면 아이가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없다. 당연히 몸의 균형도 잃게 된다. 부모는 물론 사회 전체의 인식이 달라져야 소아·청소년 비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가 말하는 ‘균형’의 의미는 다양하다. 좁게는 (한 끼 식사에서) 고른 영양소 섭취를 뜻하기도 하고, 먹은 열량만큼 (몸을 움직여) 소비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넓게는 공부 시간의 균형, 인간관계의 균형 등 아이 삶 전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정 교수는 “단순히 ‘비만 문제’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바르고 건강한 성장’을 중시해야 한다. 아이 생활 전반에서 균형을 잘 잡아주면, 학업 성취도는 저절로 좋아진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부모가 아이 몸의 균형을 잡아주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첫째는 아이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정 교수는 국가가 시행하는 ‘영유아 건강검진’과 ‘학생 건강 검진’을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영유아 건강검진은 생후 4∼77개월인 영유아의 키와 몸무게 등 신체계측, 문진과 진찰, 발달평가 등을 하는 검진이다. 모두 7차례에 걸쳐 시행돼 아이 성장 추이를 볼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학생 건강검진은 초등학교 1·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에 실시된다. 정 교수는 “지금도 영유아 건강검진을 받는 비율이 70% 밖에 안 된다. 아이 키와 체중이 정상적으로 발달하는가를 연속적으로 검진하고, 만약 병원 진료가 필요하다면 빨리 받아야 비만이 질병으로 가는 걸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모가 영유아 건강검진이나 학생 건강검진 결과지를 보고 제대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런데 제가 상담할 때 부모에게 ‘나이스(www.neis.go.kr)’에서 자녀의 키·체중 측정치를 뽑아오라고 하면, 그게 어딨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에요. 그동안 나이스에서 자녀 성적만 봤기 때문이죠. ‘균형’에는 정답이 없어요. ‘마른 비만’이 있듯이, 대사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건강한 비만’도 있거든요. (현 상태를 정확히 파악해) 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제 때에, 적절하게 주는 게 중요합니다.”
똑같이 500칼로리를 먹더라도 누가,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다르다. 정 교수는 “이 차이를 부모가 아느냐, 모르느냐가 아이 건강을 좌우한다”고 강조한다. 영유아기에 이유식을 시작할 때부터 ‘식습관 교육’이 중요한데, 이 역시도 부모가 제대로 알고 있어야 바른 교육이 가능하다. “식습관 교육의 첫 번째 적기(適期)는 3세 무렵이에요. 하지만 이 시기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기보다 부모가 다 골라서 주려고 하죠. 아이에게 간식을 줄 때 선택지를 여러 개 주면 꼭 먹어야 하는 것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고를 테니까요. 그러면 부모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에게 필요한 것으로만 선택지를 구성해 주면 돼요. 그 중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고를 수 있도록이요.”
요즘 학생들은 학교·학원을 오가느라 저녁을 제대로 못 먹는 경우가 많다. 먹더라도 일품식(한 그릇 음식)이나 분식, 패스트푸드 등을 자주 먹는다. 정 교수는 “일품식을 먹인다고 해서 나쁜 게 아니다. 다만 자장면을 먹이더라도 거기에 무엇이, 얼마나 들어있는지를 부모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비타민, 무기질을 고르게 먹을 수 있게끔 지도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 교수는 자신이 상담하는 학생에게도 “저녁으로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더라도 계란 하나를 꼭 넣어먹고, 탄산음료 대신 저지방우유 한 팩을 같이 마시라”고 권한다. “멸치와 우유에 칼슘이 들었다는 것은 대부분 엄마가 알아요. 하지만 ‘우유 대신 멸치를 먹인다’고 하는 엄마들에게 ‘우유 한 컵을 대신하려면 멸치를 얼마나 먹어야 하는지 아느냐’고 물으면 대답을 못해요. ‘밥 한 숟가락의 열량을 소비하려면 몇 걸음을 걸어야 하는가’ 등도 전혀 모릅니다. 운동·공부·음식을 다 별개로 생각하는데, 사실 같이 가야 하는 거예요. 교문에서 학원까지 자가용으로 데려다주지 말고, 걷거나 대중교통으로 다니게 하세요. 그런 생활습관 하나 하나가 건강과 직결돼요.”
정 교수는 “(자녀의 식습관 등을 고치려면) 우선 부모 태도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일이라고 납득하면 의외로 태도를 빨리 고친다. 문제는 부모가 아이에게 바른 식습관의 필요성을 설명하기보다, ‘잔소리’를 한다는 점이다. “아이에게 먹히는 방법으로 설명해야지, 부모가 자기 방식대로만 얘기하려고 들면 그건 ‘잔소리’ 밖에 안 돼요. 예컨대 제가 소아청소년 대상 캠프를 할 때는 내용은 비만 캠프이지만, 한양 도성을 걸으면서 역사 탐방을 하는 게 주된 코스예요. 다만 점심에 도시락을 먹으면서, ‘이 도시락이 집밥과 다르니?’ ‘어떤 점이 다르니?’ 같은 걸 묻지요. 다 먹은 다음에는 자기가 남긴 반찬을 친구 것과 비교해 보기도 하고요. 그러면 굳이 지적하지 않아도, 자기 식습관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아이 스스로 깨달아요. ‘균형식을 제 때 먹고, 제 때 잠자기’ ‘(자기에게 필요한 만큼) 적절하게 먹고 움직이기’. 이렇게 균형 잡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럼 학업 성취도는 저절로 오를 겁니다.”
[금요일 ㅣ 학습력 높이는 건강 플러스] ⑤ 비만
“아이 생활 균형 찾아주면, 학업성취도는 저절로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