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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팩시디스 페이스튼국제기독학교장 인터뷰]
일곱 살 소년의 하루는 마치 지옥이었다. 술 취한 아버지는 걸핏하면 행패를 부렸다. 모자(母子)의 몸과 마음엔 심한 생채기가 났다. 결국 가족은 붕괴했다. 부모는 이혼했고, 어머니는 미국으로 떠났다.
소년은 시골 할머니에게 맡겨졌다. 악몽 같던 하루를 벗어나자, 그는 차츰 건강한 자아를 찾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도움이 컸지만, 자연의 덕도 톡톡히 봤다. 소년은 갯벌·숲·나무를 놀이터 삼아 여유와 평안을 얻었다. 열살 무렵이었다. 다만 자연 속에서 노느라 학교엔 남들보다 덜 갔다. 당연히 공부도 못 했다.
줄곧 공부와 담쌓고 놀기만 하던 소년이 중2 때 처음으로 공부란 걸 하기 시작했다. 이는 역사 교생 선생님과의 만남에서 비롯됐다. 그 교생 선생님은 공부 못 한다는 이유로 야단맞기 일쑤였던 열등생 소년을 편견 없이 대했다. 감동을 한 소년은 교과서를 폈다.
상처와 갈등, 자연 속에서의 치유, 좋은 선생님…. 어린 시절, 이 세 가지 기억이 ‘불씨’가 됐다. 스물아홉 청년이 된 그가 ‘학교’를 세웠다. 페이스튼국제기독학교 다니엘 팩시디스(35·한국명 가현진) 교장의 이야기다. “전 어릴 적 큰 상처를 안고 있었지만, 다행히 자연에서 뛰논 덕분에 치유됐어요. 절 진심으로 대해준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공부도 열심히 하게 됐죠. 요즘 다양한 이유로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 너무나 많아요. 이들이 상처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자연친화적 환경과 좋은 선생님을 만날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지난달 27일, 경기 용인시 페이스튼국제기독학교에서 그를 만났다. 팩시디스 교장은 최근 이러한 스토리를 엮어 책(심장이 뛰는 소리)을 출간했다.
◇어린 시절 세 기억이 만든 학교 설립 철학
페이스튼국제기독학교는 초등생부터 고교생까지 다니는 신생 대안학교다. 미국 커버넌트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을 공부하던 팩시디스 교장이 2010년 세웠다. 팩시디스 교장은 17세 때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계 미국인이다.
역사는 짧지만, 성장세는 가파르다. 2010년 설립 당시 전교생은 고작 3명. 올해는 정원(200명)을 꽉 채웠다. 입학 허가를 기다리는 대기자도 50~60명가량 된다. 괄목할만한 입시 성과도 냈다. 그동안 페이스튼국제기독학교 졸업생들은 UCLA·맥길대 등 미국·캐나다 최상위권 대학은 물론, 중국·일본 명문대에도 합격했다. 올해 졸업생 17명도 전원 미국·중국 대학에 진학했다. “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게 참 신기해요.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해요. 그동안 ‘새로운 교육’을 원하는 학생·학부모들이 생각보다 많았는데, 그런 학교가 거의 없었다는 거잖아요.”
바깥에서 볼 때 이 학교는 ‘괴짜’다. 첫 번째 이유는 위치 때문이다. 이 학교는 도심에서 비교적 떨어진 숲 속에 있다. “빌딩 숲보다는 자연의 숲에 있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어요. 학생들에게 환경은 아주 중요해요. 억압된 환경보다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훨씬 더 창의력이 발휘될 수 있거든요.”
둘째, ‘수업’보다 ‘놀기’를 더 권장해서다. 팩시디스 교장은 “아이들이 너무 놀다 보면, 불안감 때문에라도 공부라는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며 “그때 공부가 생각보다 재밌다는 것을 학교, 정확히 표현하면 교사가 잘 알려주고 잘 이끌어 주면 효과가 난다”고 했다.
셋째는 교사에 대한 투자다. 팩시디스 교장에 따르면, 학교 재정의 70% 이상을 교직원을 위해 쓴다. 현재 페이스튼국제학교의 교사 수는 58명이다. 나머지 30%는 장학금과 학교 시설 투자 비용 등이다. 그는 “‘학교=교사’일 정도로 교사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라며 “한 학생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에 교사들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했다. 팩시디스 교장은 “일곱살, 열살, 열다섯 살 때의 경험이 남다른 교육관을 형성하게 된 배경”이라고 덧붙였다.
◇“행복한 학교에선 아이들이 공부를 즐긴다”
페이스튼의 커리큘럼은 이른바 ‘학생 맞춤형 교육’으로 운영된다. 팩시디스 교장은 “학생들이 저마다 배우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학교가 이들의 속도에 맞게 ‘발’을 맞추는 교육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학년별 커리큘럼도 ‘진도’보다는 ‘학생’에게 초점을 맞춘다. “초등학생을 예로 들어볼게요. 초등생에게 중요한 건 공부보다 ‘정서적 안정’이에요. 그래서 초등생들에게는 교육학을 전공한 교사들이 투입돼요. 이들을 통해 학생이 심리적인 안정을 가지면, 이후 학년이 올라갔을 때 학습 효과는 더 극대화되는 것이죠.”
수업과 학교 생활은 개방적이다. 수업은 토론형·융합형으로 진행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데 집중한다. 운동·음악·미술 등 놀면서 배우는 클럽 활동도 다양한 편이다.
그는 “짧지만 미국 고교 생활을 해 본 경험, 대학원 때 토머스제퍼슨·웨스트민스터·샤머네이드 등 미국 명문고에서 전도할 때 보고 느낀 것들이 페이스튼에 반영했다”고 했다.
팩시디스 교장은 “학교가 행복한 곳이 된다면, 공부도 충분히 즐길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지구 상에 공부를 못하게 태어난 아이는 존재하지 않아요. 공부를 싫어하게 만드는 구조만 있을 뿐이죠. 현재 학교와 부모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 학교가 바뀌어야 해요.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알려준 다음, 지식을 전달해야 한다는 거죠. 부모도 공부하라고 강요할 게 아니라 아이를 지켜봐 주고 먼발치서 응원하는 게 더 중요해요. 저는 어린 시절과 미국에서의 경험을 통해 이러한 교육의 필요성을 확인했고, 그리고 페이스튼을 통해 확신했어요.”
그는 조만간 서울을 비롯해 수도권 등지에 페이스튼국제학교를 10여 군데 더 설립할 생각이다. 팩시디스 교장은 “앞으로 페이스튼과 같은 학교를 100개쯤 더 만드는 게 꿈”이라고 했다. “교육이 결국 희망이니까요.”
“교육이 곧 희망… 학교는 행복한 곳 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