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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학년도 고려대 입시 개편안 발표 그 후]
고려대가 지난달 28일 △논술전형 폐지 △고교추천전형 확대 △정시 축소 등을 골자로 하는 ‘2018학년도 입시 개편안’을 공개했다. 정시 비중을 15%로 낮추고, 신입생 정원의 50% 내외를 고교 추천자로 선발한다는 다소 파격적인 내용이다. 이 개편안에 대해 일부 입시 업체들은 “심층면접 사교육 시장이 커질 것” “특목‧자사고 학생들에게 불리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이와 관련 고려대 입학처는 “아직 세부 전형안을 연구 중이며 특정 고교에 유리할 입시안은 없을 것”이라며 “자세한 사항은 오는 12월~1월께 정할 방침”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세부안이 발표되기도 전, 학부모 혼란을 부추기는 일부 입시업체들의 예측을 뒤집었다.
◇ 심층면접 사교육 확대? “섣부른 판단”
이날 고려대가 기자간담회와 보도자료를 통해 입시 개편안을 발표하자마자 몇 입시 업체들은 앞다퉈 ‘고려대 논술 전형 폐지에 따른 시장 변화 예측’ ‘2018학년도 고려대 대입전형 변화분석’ 등의 이름으로 예측 자료를 냈다.
한 입시업체는 “고려대가 학생부종합전형 모집인원을 확대하고 서울대와 같이 수시모집 대부분을 학교장추천전형과 융합형인재전형(심층면접 도입 예고)으로 운영하면 심층면접 사교육 시장이 기존보다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논술 사교육보다 심층구술면접 사교육이 고가의 소수정예 형태로 이뤄져 사교육비 부담이 증가할 수 있다”고도 했다. 논술전형 폐지로 사교육 부담을 줄이고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하겠다는 염재호 총장의 의지가 이번 개편안에 반영됐다는 고려대 측 설명과 전면 배치되는 분석이다.
고려대가 고교추천전형을 전체 모집 정원의 50%까지 확대함에 따라 면접이 강화될 가능성은 있다. 김재욱 고려대 입학처장도 “학생부로 확인할 수 없는 사항은 심층면접을 통해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수시 전형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까지 폐지된다면 심층면접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고려대가 △(고교추천전형) 선발인원 △지원자격 △수능 최저학력기준 등 세부사항을 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심층면접 도입으로 인한 사교육 증가’를 예측하는 것은 이르다.
우선 고려대가 심층면접 부담을 줄이기 위해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강화하는 대신 일반면접을 실시할 가능성도 있다. 만약 고려대가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없애거나 완화한 뒤 심층면접을 강화하면 일종의 ‘대학별고사’를 치른다는 지적이 제기될 수도 있다.
한 교육관계자는 “면접 강화 조짐이 보인다고 해서 곧바로 ‘심층면접 사교육이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며 “논술을 폐지하며 ‘사교육 완화’라는 슬로건을 내건 고려대가 그런 고민 없이 입시안을 마련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입시업체들과 언론이 사교육 부담을 우려하는 상황에서 실제로 사교육이 필요한 심층면접을 실시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며 “공교육 정상화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 범위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강화하고 서류 토대 일반면접을 치를 것으로 전망한다”고 덧붙였다.
고교 현장에서는 고려대의 입시 방향이 크게 서울대와 같다는 점을 들어 면접보다는 교과나 비교과의 비중이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서울의 한 특목고 교무부장은 “고려대 입시개편안은 현재 서울대 입시 체제와 유사한데, 서울대 면접 수준을 넘지 않는 방향으로 가지 않겠느냐”며 “고려대 고교추천전형과 융합형인재전형이 서울대 지역균형선발전형·일반전형과 유사해 진다고 봤을 때 오히려 교과·비교과 수준이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경기도의 한 일반고 입학부장은 “고려대가 면접에서 어떠한 문항을 제시하는지가 관건”이라며 “세부안이 확정된 뒤 심층면접에 대해 논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서울대는 교과 과정을 토대로 한 면접 문항을 제시하지만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면접 사교육을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덧붙였다.
◇특목‧자사고에 불리하다? “융합인재 확대 등 유리한 측면도 많아”
일반고 출신들이 주로 지원했던 학교장추천전형이 ‘교과’와 ‘종합’으로 나뉘어 추천 받는 ‘고교추천전형’으로 대폭 확대되자, 입시업체들은 ‘일반고 유리’에 초점을 맞췄다. 자연스레 그간 학교장추천전형에 불리했던 특목‧자사고에는 ‘불만족’이란 명패를 달았다. 특목‧자사고가 강세를 보인 정시도 절반 가까이 줄고, 지원율이 낮았던 고교추천전형까지 확대돼 특목‧자사고 출신들이 불리해졌다는 분석이었다.
하지만 이는 ‘융합형인재전형의 확대’와 ‘고교추천전형의 변화’를 간과한 예측이다.2018학년도부터 적용되는 고교추천전형의 경우 ‘교과’와 ‘종합’으로 나눠 추천 받는데, 학생부교과는 지금의 학교장추천전형과 유사하게, 학생부종합은 인재상에 따른 평가방식을 취할 것으로 보여 기존 학교장추천에 지원하지 않았던 특목‧자사고 학생들이 지원할 가능성이 열렸다고 볼 수 있다.
특목‧자사고 관계자들의 의견도 비슷했다. 융합형인재전형이 2017학년도 13.3%에서 2018학년도 25% 내외로 2배가량 늘고, 고교추천전형도 교과와 종합으로 이분되면서 특목고 재학생 지원 폭이 넓어질 것이라는 긍정적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논술전형이 폐지됐지만 일부 광역 단위 자사고와 특목고를 제외하고는 논술전형에 지원하는 인원이 적었고, 10% 내외의 특기자전형은 남아 있어 타격이 거의 없다는 게 교사들의 설명이었다.
경기도의 한 특목고 진학부장은 “논술전형은 원래 대다수 특목고에 의미가 없었다”며 “우리 학교 학생들도 주로 융합형인재전형을 노렸는데, 그 인원이 늘어난 것은 반가운 일”이라고 했다. 이어 “고려대는 특목‧자사고 학생들이 대거 진학하는 대학의 하나인데, 고려대가 특정 고교에 유‧불리할 입시안을 기획했겠느냐”며 “물수능으로 인해 수능 변별력이 줄고, 논술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의 학력 수준이 다소 낮은 점을 감안해 개선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서울의 한 광역 단위 자사고 입학처 관계자는 입시업체들이 ‘광역 단위’와 ‘전국 단위’ 자사고를 구분해 명시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서울의 일부 광역 자사고들은 논술전형 올인해 타격이 있을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확대·개편되는 고교추천전형을 노리는 방안도 생각해볼 만하다”며 “만약 고려대가 일반면접을 치르고 수시 최저학력기준을 강화한다면 수시 이월인원이 다수 발생하고, 이 인원이 정시모집으로 넘어가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한 전국 단위 자사고 진학담당교사도 비슷한 견해를 내놨다. 그는 “광역 단위 자사고의 경우 논술전형에 주로 지원했겠지만, 전국 단위 자사고는 융합형인재전형이나 정시 전형에 주로 지원했다”며 반박했다. 이어 “고려대 고교추천전형이 확대되고 예정대로 교과와 종합으로 나뉘면, 우리 학교도 고교추천을 노려볼 생각”이라며 “융합형인재전형 선발 비중도 늘어 오히려 유리해진 셈”이라고 평했다.
◇"고교 현장 호도하는 분석‧예측 없어야"
교육현장에서는 대학의 입시개편안에 대해 학부모·학생의 혼란을 일으킬 만한 섣부른 견해는 삼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기도의 한 특목고 진학교사는 “2018학년도 고려대의 입시 개편안은 ‘공교육 정상화’와 ‘우수인재 선발’의 접점을 찾으려한 노력이 보인다”며 “수험생과 학부모가 정확한 정보를 얻기 힘든 상황에서 진학 정보를 호도할 수 있는 예측은 없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기도의 한 일반고 입학부장도 “고려대의 2018학년도 입시 개편안은 수능 변별력이 없는 상황에서 내린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라며 “사교육 경감 효과와 함께 논술전형 합격자 성적이 다소 낮은 것도 논술 폐지의 이유였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목소리는 입시업체 관계자에게서도 나왔다. 이영덕 대성학력개발연구소장은 “고려대가 면접을 강화한다 하더라도 교과 위주의 공교육 정상화 취지에 부합하는 면접 형식을 택하지 않겠느냐”며 “공교육 정상화와 맞지 않다는 식의 왜곡된 해석은 삼가야 한다”고 했다. 이 소장은 “특목‧자사고 등 주요 고등학교와 인원수 적은 지방의 일반 고등학교에서 동일하게 일정 인원을 추천할 수 있는 것인데, 이러한 개편이 공교육 정상화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느냐”며 “수능 최저학력기준과 심층면접 여부 등 내년 3월까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계에 따르면 현재 고려대와 같이 사교육 유발 등을 이유로 논술전형 폐지를 추진 중인 대학이 있다. 하지만 고려대 개편안에 이러한 억측들이 나오자 해당 대학들이 공개를 꺼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고교추천전형 비율을 전체 모집 정원의 50% 가까이 늘렸다는 것은 그만큼 고려대가 학생부종합전형을 신뢰한다는 의미다. 또한 오류 문항을 최소화하고 사교육을 줄이기 위한 정부의 ‘쉬운 수능’ 기조로 수능 변별력이 없어진 상황에서 택한 최선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학생부종합은 고교 교육으로 잘 준비해 온 학생에게 진학문이 넓은, 공교육 정상화에 가장 부합하는 입시 전형이다. 고려대 입학처는 “3년간 학생을 교육해 온 고교에 추천권을 주고 대학이 이를 신뢰하는 것을 원칙으로 입시를 진행해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권오현 서울대 입학본부장도 “서울대가 학생부종합전형을 입시 중심에 두는 것은 ‘학교와 대학이 연계해 국가·사회가 요구하는 다양한 인재를 함께 키운다는 내적 합의’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교육적·사회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며 “학교가 평가한 기본 데이터를 대학이 해석하는 형태라는 점에서 평가권의 균형도 이뤄진다”고 설명한 바 있다.
대학들은 우수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세부 전형을 자율적으로 다듬어야 한다. 물론 그 중심에는 ‘고교 교육’이 자리해야 한다. 공교육 정상화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입시 개혁을 선도하는 대학들이 머뭇거리지 않도록 입시 업체들은 섣부른 분석과 예측을 삼가야 한다.
최인식 고려대 입학처 입학기획팀장은 “공교육 강화라는 염재호 총장의 의지가 깃든 이번 개편안은, 큰 틀을 검토하는 데만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며 “세부 전형안은 계속 연구 중이며 12월~1월경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입시 전형이) 특정 고교에 치중되는 일은 없을 것이며 사교육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세부안을 정할 방침이다. 대교협 승인이 있을 내년 3월까지는 기다려 달라”고 덧붙였다.
[조선에듀] ‘면접 사교육 확대?’ 대학 입시 개편안에 입시업체들 억측 삼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