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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수업 시간에 선생님과 이성교제 문제를 상담하고, 음악 교과서만으로 코드를 익혀 기타를 연주한다? 다른 나라 수업 풍경이 아니다. 경기도교육청이 제작, 내년 3월에 배포될 예정인 '창의지성 교과서' 얘기다.
지난 9월, 경기도교육청은 음악과 철학(일명 '더불어 나누는 철학') 등 창의지성 교과서(중학교 과정) 2종을 제작했다. 교육청 차원에서 최초로 제작된 이들 교과서에 대해 지명숙 경기도교육청 장학사는 "융합교육을 지향하고 학생이 중심 되는 수업을 만들기 위한 방안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교과서만으로 주입식 교육을 탈피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조선에듀케이션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교과서의 역할을 재정의하고 확대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창의지성 교과서 집필자 2인을 만났다. -
◇철학ㅣ'이벤트성 인성교육'의 한계, 교과서로 보완한다
"감동적 강연 한 번 듣고 상담 프로그램에 두어 차례 참가한 경험만으로 아이들의 고민이 말끔히 해결될 수 있을까요?" '더불어...'의 집필 위원을 맡은 이수광(47) 이우고등학교 교장은 "이벤트성으로 이뤄지는 현행 인성교육은 한계가 뚜렷하다"고 말했다. "자기 반성과 사유는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그 답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학교는 '입시 공간'이 아닌 '삶의 공간'이 돼야 해요. 학생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에서가 아니면 어디서 학생들의 고민이 논의될 수 있겠습니까. 이번 교과서는 이 같은 고민 해소 과정에 목적을 두고 편찬됐습니다."
창의지성 철학 교과서는 총 13개 단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 교장을 비롯한 집필진은 교과서 내용 구상에 앞서 불특정 다수의 중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13개 단원은 그 중 가장 많이 중복된 질문을 비슷한 범주로 추려 묶은 것이다. 실제 중학생의 솔직한 생각을 반영해선지 대부분의 질문은 다소 발칙하고 지극히 현실적이다. '우리도 어른들처럼 사랑하면 안 되나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요' 같은 게 대표적 예. 기존 철학 수업이 '당위적 답변' 나열에 그쳤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변화다.
이 교장에 따르면 창의지성 철학 교과서의 최대 강점은 학생들이 서로의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는 것이다. 인터뷰 말미, 그는 창의지성 철학 교과서로 학생을 가르치게 될 교사를 위해 한 가지 '활용 팁'을 건넸다. "반드시 목차 순서대로 진도를 나갈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들이 가장 많이 고민하는 문제에서부터 시작하세요. 어느 단원부터 가르치든 결국은 그 또래 학생이 알아야 할 철학적 지식의 뿌리에 닿도록 설계돼 있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
◇음악ㅣ학교 수업은 왜 노래방에서처럼 재밌지 않을까?
"요즘 아이들에게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현상 하나가 뭔지 아세요? 노래방에서 유행가 부를 땐 가수 못지않은 실력을 뽐내면서 정작 학교 음악 수업 시간만 되면 음치로 돌변한다는 겁니다." 손철수(57) 경기 용인 이현중학교 교감은 "학생들이 '평소 즐기는 음악'과 '교과서 수록 음악'을 구분해 생각하는 게 문제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창의지성 음악 교과서의 목적은 '살아있는 음악 교육'에 있습니다. 음악은 교과니, 비교과니 하는 구분을 떠나 일상에 녹아든 문화 중 하나예요. 이번에 제작된 교과서는 학생에게 일단 음악을 '즐기고 표현하는' 법부터 가르쳐 음악에 대해 흥미를 갖도록 유도하고, 이론 교육은 이후 순서로 진행하게 해놓았습니다. '이론-실기' 순으로 진행되는 기존 교과서 진도를 살짝 뒤집은 거죠."
접근 방식에 변화를 주긴 했지만 창의지성 음악 교과서는 음악에 무지한 학생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6개 단원으로 구분되는 교과 과정은 기초 단계인 '음악과 인사하기'에서부터 심화 단계인 '한 발 더'에 이르기까지 차분하게 짚어준다. 단원별로 곡에 얽힌 배경지식은 물론, 감상문 작성 요령과 악기 연주법까지 제시돼 있다.
철학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반드시 목차 순서대로 공부할 필요는 없다. '유연한 교과 지도'로 대표되는 창의지성 교과서의 장점을 적극 활용, 학생과 교사가 필요에 따라 특정 단원 내용을 먼저 골라 지도해도 괜찮다.
"학생들이 기타 연주를 배우고 싶어하면 기타 코드 관련 단원을 펼쳐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가르쳐도 됩니다. 이론 암기에 급급할 시간에 악기 하나라도 제대로 연주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게 진정한 음악 교육이니까요."
'톡톡 튀는' 창의지성 교과서 저자 2인을 만나다
성남·용인=남미영 조선에듀케이션 기자
willen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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