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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도 할머니처럼 죽으면 어떡해”
여섯 살 난 아들을 둔 워킹맘 김민희(가명·서울 영등포구)씨는 요즘 ‘죽음’에 대한 공포로 불안에 떠는 아이로 인해 고민이 깊다. 엄마 옆에선 늘 쉴 새 없이 재잘대던 아이가 얼마 전 친할머니의 장례식 이후로 말문을 꾹 닫아버린 것이다. 특히 밤만 되면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엄마도 할머니처럼 죽으면 어떡하느냐’며 눈물을 펑펑 쏟아낸다. 김씨는 “늘 사랑으로 돌봐주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헛헛한 마음에 그러는가보다 싶었다가, 점점 도가 지나쳐 아동심리상담센터까지 찾았다”며 “아직 죽음을 알기엔 너무 어린 나이인데,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고 한숨지었다.
맞벌이 부부 등을 대신해 육아를 적극적으로 맡는 조부모가 늘어나는 가운데, 이후 이들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며 충격을 받는 손주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어렵고 무거운 주제로 인해, 부모가 아이들에게 이를 적절하게 설명하고 이해시키기란 쉽지 않다. 이에 전문가들은 “어린 아이들의 경우 부모나 조부모와 같은 양육자, 혹은 자신과 가까운 대상의 죽음을 경험할 때 어른보다 더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평소 죽음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과연 이들이 말하는 ‘죽음 교육’이란 무엇일까.
◇ 죽음을 올바르게 알려주려면…“부모부터 계몽해야”
우리나라에서 죽음 교육은 아직 생소하다. 특히 양육자인 부모들은 대개 이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 실제로 아이가 죽음에 대해 물으면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 꾸며내 말하거나, 재수(財數) 없는 질문이라며 답변 자체를 회피하는 부모들도 더러 있다. 육아맘들이 자주 찾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이 같은 자녀의 질문에 대처하는 방법을 묻는 게시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특히 최근엔 어릴 적부터 돌봐 준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불안을 호소하는 자녀에 대한 고민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성인뿐 아니라 어린 아이들에게도 죽음 교육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죽음 교육(Death Education)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에 대해서 평소 생각하고 이에 걸맞은 준비를 해나가는 것을 말한다. 오진탁 한림대 철학과 교수는 “부모가 평소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죽음을 설명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러한 이해 과정 없이 아이가 갑자기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맞이한다면,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선진국에서는 과거부터 죽음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죽음 교육이 초·중·고교 교육과정에 일부 포함돼 있고, 아시아권에선 대만이 고교 한 학기당 2시간의 생명 교육을 하고 있죠.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삶의 소중함과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죽음 교육을 도입해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죽음 교육을 위해선 부모가 먼저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죽음을 궁금해하거나 공포를 느끼는 아이에게 이를 잘 설명하려면, 부모부터 죽음에 대한 올바른 관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강선보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죽음 자체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이와 관련한 교육 자체를 부정하는 학부모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이는 양육자로서 바르지 못한 태도”라며 “과거 숨기기에 급급했던 성교육이 점차 인식이 바뀌어 현재 사회적으로 공론화된 것처럼, 누구나 언젠가 죽는단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부모가 먼저 죽음 교육의 필요성을 공감해야 한다”고 전했다.
“올바른 죽음 교육이 이뤄지려면, 부모가 먼저 계몽(啓蒙)해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입니다. 죽음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자연의 이치에요. 결코 나쁘거나 부정적으로 볼 사안이 아닙니다. 부모가 이 같은 개념을 먼저 깨닫고, 평소 가정에서 아이에게 ‘죽음은 계절이 바뀌듯이 자연스런 삶의 형태’라는 걸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 ‘사실 중심’으로 분명하게 설명해야…관련 동화책 읽어주는 것도 도움
그렇다면 자녀에게 죽음을 어떻게 알려줘야 할까. 전문가들은 먼저 아이에게 죽음에 대한 사실을 억지로 차단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사실을 숨김으로써 오히려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중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죽은 사람에 대해 ‘먼 곳으로 갔다’ 등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처럼 막연히 설명해준다면, 나중에 주변 상황에 의해 죽음을 확연히 받아들이게 되면서 ‘죽음은 곧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 교수는 “우선 질병이나 사고 등 죽음의 원인을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 설명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때 주의할 점은 병이 아주 심하거나 상당히 드문 사고였음을 주지시켜 그저 아파서 죽은 게 아니라는 걸 일러줘야 한다”고 말했다.
주변 사람이나 애완동물 등 가까운 대상의 죽음을 경험할 때에는 우선 따뜻하게 위로하고 아이를 편하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다음 죽음에 대해 아이가 궁금해하는 걸 중심으로 찬찬히 설명해야 한다. 이때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의 물음에만 답변하는 것이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나이가 들면 죽게 돼’ ‘동물이나 식물도 마찬가지야’ ‘죽으면 심장이 더는 뛰지 않고 숨을 쉬지 않게 되지’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아서 움직일 수 없어’ 등 눈에 보이는 현상이나 사람의 일생을 알기 쉽게 설명해줘야 한다. 강 교수는 “최근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늘면서, 펫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반려동물이 죽은 뒤에 경험하는 상실감과 우울 증상)을 겪는 아이들이 있다”며 “이때 부모가 평소 반려동물의 노화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하고, 함께 하는 시간을 행복하고 좋은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간혹 죽음과 같은 큰 사건을 겪으면 자기 탓으로 돌리는 아이도 있는데, 이럴 땐 아이의 잘못이 아님을 분명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죽음을 주제로 한 문학 작품을 통해 죽음을 이해시켜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전문가들은 부모가 자녀의 눈높이에 맞는 동화책을 읽어준다면, 보다 쉽게 죽음을 설명해줄 수 있다고 말한다.
강 교수는 “우리나라 청소년 행복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다. 청소년 자살률도 10년째 1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개선이 여의치 않은 실정”이라며 “가정에서부터 부모가 적극적으로 나서 평소 죽음을 의식하고 현재의 삶을 헛되이 살지 않게 도와준다면, 점차 아이들의 행복지수는 높아지고 자살률도 낮아질 것”이라고 전했다.
조부모 죽음 이후 “엄마 죽지 마” 울먹이는 아이, 어떡하죠?
-죽음에 공포 느끼는 아이 위해 '죽음 교육' 필요
-부모부터 죽음에 대한 부정적 인식 떨쳐야…감정보단 사실 위주로 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