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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고교생 학부모가 된 김민주(44·가명)씨는 입학식 후 아이가 받아온 학습환경조사서(구 가정환경조사서)를 보고 황당했다. 현재 거주하는 집이 자가인지, 아니면 전세나 월세인지까지 적게 돼 있었던 것. 가정 경제 상황에 대해서도 ‘매우 좋음’ ‘보통’ ‘매우 어려움’ 등으로 구분해 표시하게 돼 있었다. 김씨는 “요즘 시대에도 학교에서 이런 내용을 조사하는 것을 알고 황당했다”며 “교육청에 항의하고 싶지만, 아이가 피해를 볼까 봐 참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김씨는 몇 가지 항목을 빼고, 꼭 필요하다 싶은 내용만 적어 보냈다.
올해 처음 어린이집에 자녀를 보낸 이지선(36·가명)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어린이집에서 받은 환경 조사서에 부모 학력이나 직업은 물론 ‘(집에)방이 몇 개인지’까지 쓰게 돼 있더라”며 “불쾌해서 관련 항목은 기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새 학기가 되면서 학부모 사이에 학습환경조사서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부모 직업이나 학력, 종교는 물론 재산 정도까지 묻는 학습환경조사서에 대해 불쾌감을 토로하는 학부모가 많다. 2012년 교육부가 ‘학생 보호자의 개인정보 수집 범위에 직업, 월수입(재산), 학력 등은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이듬해 필수 조사 항목을 보호자의 이름과 비상연락처로 한정한 ‘자율 기재 방식의 학습환경조사서’ 양식까지 배포했음에도 여전히 비인권적 조사가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지난해 6월 교육부는 한 차례 더 ‘학습 환경 조사서 매뉴얼’을 작성해 일선 학교에 나눠주기도 했다. 중 2자녀를 둔 엄마 한정연(42·가명)씨는 “교육부가 따로 마련한 양식이 있는 줄 몰랐다”며 “담임교사가 과거 쓰던 조사서 양식을 매년 그대로 보내는 것 같더라”고 했다.
일부 학부모는 간소화된 학습환경조사서에 대해서도 어려움을 호소한다. 이혼 후 혼자서 두 자녀(중 1· 초 5)를 키우는 엄마 정소희(41·가명)씨는 “보호자란에 아빠란을 비운 채로 보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반 아이들이 다 알게 돼 아이가 한참 힘들어했다”며 “담임교사마저 (조사서를 본 뒤)아이에게 이혼을 언제 했는지, 아빠랑 연락하고 지내는지, 생활비는 누가 버는지, 지금 누구와 어디서 사는지 등을 꼬치꼬치 캐물었다고 해 화가 났다”고 말했다. 초 4자녀를 둔 정재현(39·가명)씨는 “아이 관심 분야나 학습, 건강 등에 대해 교사에게 알리고 싶은 내용을 자율적으로 쓰라는데,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늘 몇 시간씩 고민한다”며 “아이 단점이나 앓은 질환 등을 솔직하게 썼다가 공연히 불이익이나 차별을 받을까 봐 걱정된다”고 했다.
이와 달리 학습환경조사서가 (교육적 차원에서)필요하다는 의견도 많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 김서연(40·가명)씨는 “지난해 한 지방 초등학교에서 입학 전 앓았던 병명이나 학습 정도를 물어 논란이 됐다고 들었다”며 “하지만 아이들을 지도하려면 건강 상태나 (서로 다른) 입학 전 학습 정도는 교사가 알아야 생각한다”고 밝혔다. 가정환경 조사서 도움을 받은 사례도 적지 않다. 초2 자녀를 둔 엄마 홍지연(39·가명)씨는 “아이에게 아토피로 인한 심한 가려움증이 있다고 적어 보냈다. 수업 시간에 여기저기 긁으며 주위를 방해할까 봐 걱정됐다. 다행히 선생님이 그런 점을 배려해서 잘 지도해줘 수업 적응에 도움받았다”고 설명했다. 초 3자녀를 둔 또 다른 학부모 박미연(42·가명)씨도 “아이가 가벼운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증상이 있다는 점을 솔직히 써 보낸다”며 “작년에도 학년 초 (아이 증세 때문에)친구와 다툼이 생겼을 때 담임교사가 잘 중재해 줬다”고 말했다. 초 1자녀를 둔 학부모 이청연(39·가명)씨도 “아이가 입학 전 어느 정도 공부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적었다”며 “그래야 아이들 수준이나 학업 상태에 맞는 수업이 가능할 것이라고 봤다”고 전했다.
학교나 교사의 주의·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교사 허석우(45·가명)씨는 “사실 지금 논란이 되는 ‘부모 이혼’이나 ‘부모 동거’ 여부, 가정 형편 등도 (교육적 차원에서)교사가 어느 정도 알아야 할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부모·학생의 사생활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비인권적 항목은 삭제하는 게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 김철민(43·가명)씨는 “학부모는 가정 상황을 알렸을 때 아이가 학교에서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을까 봐 염려한다”며 “학부모가 우려하지 않게끔 교사·학교가 학습환경 조사의 취지를 잘 알리고,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학부모 개인정보 묻는 학습환경조사서
-“지나치게 사생활 캐물어 비인권적” vs “학생 지도에 필요한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