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졸업식 오지 말래요", 취준생 "학사모는 사치"
손현경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7.02.13 18:08
  • 조선일보 자료사진
    ▲ 조선일보 자료사진

    “‘엄마 14일에 학교 안 와도 돼.’ 라고 카카오톡(모바일 메신저)이 오더라고요. 14일이요? 우리 애 대학 졸업식날이에요. 나름 서울에서 알아주는 대학교에 6년 동안 다니다가 졸업하는 거라 친척들도 부를 셈이었는데, 오지 말라고 저러니⋯ 지 언니한테 물어보니까 취업을 아직 못해서 엄마, 아빠한테 미안하니까 그런 거 같다고 하더라고요. 아니 그래도 한번 밖에 없는 학사모 쓰는 졸업식인데⋯ 그냥 답장으로는 ‘알았다’고 보냈죠. 마음이 아파요.” (정미옥·가명·55·충남 태안)

    수도권에 있는 A 대학 국문학과를 오는 18일에 졸업하는 이해창(가명·28·남)씨의 일정표에는 해당 날짜에 아무런 표시가 돼 있지 않다. 이씨는 “그날도 역시 평소처럼 임용고시 준비를 할 계획이다. 평소에는 학교 도서관에 가지만 그날은 졸업식 분위기에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아서 동네 고시원에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충청지역의 B 대학을 다니는 최혜수(가명·26·여)씨 역시 14일 졸업을 앞두고 있지만, 취업을 하지 못해 참석하지 않을 계획이다. 최 씨는 2년 동안 언론고시를 준비 중이다. 그는 “미취업으로 인해 졸업식 분위기를 만끽할 상황이 아니다”라며 “취업에 성공한 친구들과 비교가 되기 때문에 졸업식에 가는 것은 사치”라고 토로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2월 대졸 예정자 1391명을 상대로 졸업식 참석 여부를 조사한 결과 전체의 30.9%가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해당 인원 중 23.7%는 '취업 준비하느라 바쁘다'를, 20.7%는 '취업이 안 돼서 가기 싫다'를 불참 이유로 꼽았다.

    최씨는 스마트폰을 가끔 살피며 지난주 먼저 졸업한 다른 대학 친구들의 졸업사진을 SNS로 봤다. 최씨는 그들의 담벼락에 있는 ‘드디어 사회생활 첫발 진출!’,   ‘OO 은행 최합(최종합격)!에 OO대 졸업까지 2연타 ㄷㄷ, 이제는 결혼만 남았나’ , ‘OOO, 이제는 장가가라’ 등의 축하 플래카드 등의 문구를 보면서 스스로 대리만족을 한다고 했다.

    유례 없는 취업 한파에 냉랭한 졸업식 분위기는 앞으로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는 ‘300인 이상 업체의 2017 상반기 채용 예정 인원’이 2만 9000명이라고 지난 7일 밝혔다. 지난 8년간 가장 적은 인원이다.

    졸업장을 졸업식 날 못 받은 이들은 나중에 졸업장을 학과 사무실에서 조용히 찾아갈 계획이다. 이씨는 “졸업식 날 동기ㆍ후배들과 학사모를 함께 던지며 웃지는 못하더라도 졸업장은 받아가야죠”라며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