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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이른바 ‘최순실 사태’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앞둔 수험생과 학부모 마음도 어지럽히고 있다.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지난 2014년 이화여자대학교 입시를 치르는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으며, 입학 후 학사 관리에서도 특혜가 있었다는 의혹이 불거져서다. 교육부는 지난달 31일 이러한 의혹과 관련해 특별감사를 시작했다. 교육부는 ▲이화여대가 2015학년도 체육특기생 대상 종목을 늘리면서 승마를 포함한 점 ▲입학과정에서 입학처장이 ‘금메달을 가져온 학생을 뽑아라’고 말한 점 ▲원서 마감일 이후 획득한 금메달을 서류평가에 반영한 점 ▲정씨의 출석·과제와 관련된 학칙 개정과 학사 관리 특혜 의혹 등을 집중적으로 살필 계획이다. 정씨의 출결기록을 부실하게 처리한 청담고등학교도 특별감사에 들어갔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는 수험생과 학부모의 마음은 허탈함과 분노로 가득하다. 대학 3학년과 고 3 자녀를 둔 학부모 신미정(50·서울 마포)씨는 “새벽 1시가 넘어서야 돌아와 쪽잠을 자고 다시 등교하는 아이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는데, 최순실·정유라 관련 기사를 접하고는 정말 기운이 쭉 빠졌다”며 “누군가는 그렇게 쉽게 대학에 간다는 사실에 허망함을 느꼈다”고 했다. 공부하는 아이를 격려하기도 부끄럽다는 얘기도 나왔다. 고 3 학부모 김창영(50·서울 은평)씨는 “그간 열심히 하는 만큼 결과가 나온다고 말했는데, 거짓말을 한 꼴이 됐다”며 “한 번은 뉴스를 보던 아이가 ‘쟤(정유라) 하나만 그랬겠어?’라고 하는데 할 말이 없더라”고 했다. 또 다른 고 3 학부모 김기현(47·경기 수원)씨는 “(최순실·정유라가 잘못인 것을 알면서도) 부모로서 그렇게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마음마저 들었다”며 “열심히 바르게 사는 사람들이 이런 생각까지 하게 만드는 나라가 싫다”고 토로했다. 고 3 자녀를 둔 이상현(49·경기 김포)씨는 “최근 수시 원서를 넣을 때 아이가 학교생활기록부에 ‘지각 2회’ 표시된 것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고, 면접에서 그에 대해 질문할까 봐 답변까지 준비했다”며 “그런데 정씨는 고 3 때 고작 28일만 학교에 가고도 아무 문제 없이 이대에 합격했다니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학생들도 상처를 받긴 마찬가지다. 특히 SNS에 올라왔던 정씨의 과거 발언 등에서 분노를 느낀 경우가 많았다. 고 3 김경원(가명·서울 서대문)군은 “정씨가 ‘부모 잘 만난 것도 능력’ ‘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식으로 쓴 걸 봤다”며 “부정 입학 못 시켜주는 부모를 원망하라니, 어떻게 저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재수생인 배수영(가명·경남 창원)양은 “열심히 노력한 학생들의 자리를 정씨가 빼앗은 게 아니냐”며 “대입만 바라보며 재수까지 하는 내가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고 한탄했다. 나라에 대한 실망감을 표출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 고 3 이상혁(가명·서울 은평)군은 “흙수저니 금수저니 해도 열심히 공부하면 뭐든 할 수 있다고 믿었다”며 “하지만 악착같이 공부해도 저런 부모를 둔 사람들한테 뒤진다고 생각하니 공부할 의욕이 사라졌다”고 했다. 또 다른 고 3 이채영(가명·서울 송파)양은 “법조인이 되는 게 꿈이라 관련 학과에 지원하고 수시 면접과 수능을 준비 중이다. 어떤 법조인이 될 것인가 등에 대한 답변을 준비했는데, 그 답변이 현실과 너무 달라서 내가 모의면접을 하면서도 헛웃음이 나는 지경이다. (나라가 이런데) ‘꿈이 다 무슨 소용’이라는 생각만 든다”고 말했다.
‘최순실 사태’가 올해, 또는 이후 대입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는 의견도 있다. 감사 과정에서 (정씨가 지원했을 가능성이 있는) 다른 대학으로 특별감사가 확대될 수 있어서다. 한창 입시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감사가 진행되면, 학생 선발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또한 이화여대의 경우 특혜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 내년 입시에서 정원 조정 등의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 일부 학부모들은 “입시 공정성을 믿지 못하겠다”는 강경한 의견을 내기도 했다. ‘제2의 정유라’가 언제 또 나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체육특기생 비리는 그동안 심심찮게 터져 나왔고, 최근에는 개그맨 김구라씨의 아들 김동현군이 인하대에 수시 합격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고 2 자녀를 둔 학부모 고미정(가명·서울 서초)씨는 “입학사정관전형부터 지금의 학생부종합전형까지 늘 ‘공정성 논란’이 있었다”며 “그래도 ‘공정성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대학 측 말을 믿었는데, 이번 정씨 의혹으로 믿지 못하게 됐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 대학 입학 관계자는 “지난 2008년 입학사정관전형이 도입된 이래 ‘공정성’을 높이고자 대입 시스템을 수차례 개선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는데, 이번 사태로 대학에 대한 학부모 신뢰가 무너진 것이 안타깝다”며 “하지만 대다수 대학에서 다수 평가자에 의한 다단계 평가, 조정평가, 교차평가 등 제도를 통해 공정하게 신입생을 선발하고자 한다는 점을 알아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최순실 사태’로 허탈한 수험생·학부모
돈·권력 있으면 다 되는 세상… "공부하는 아이 보기가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