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빠&할마의 육아톡톡④]“할아버지라서 행복합니다.”
방종임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6.10.11 15:56
  • 아이를 부모처럼 맡아서 교육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늘고 있다. 이들을 일컬어 할빠(할아버지+아빠), 할마(할머니+엄마)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질 정도다. 이들은 대개 억척스럽게 자녀를 키우며 우리나라 교육 열풍을 주도했던 50~60대 베이비붐 세대다. 본인들의 이런 경험이 손주 교육에 열정을 쏟는 배경이 됐다. 조선에듀는 맞벌이 부부 시대에 실질적인 육아와 교육을 담당하는 이들을 차례로 만나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네 번째 주인공은 경찰에서 인자한 할아버지로 변신한 신상채(66)씨다.

    신씨는 친손녀 휘수(8), 유수(5)와 외손자 이겸(8)과 이담(4)까지, 이렇게 4명의 손주와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는 할아버지다. 휘수와 유수는 함께 살면서 온전히 신씨 부부가 맡아 키웠고, 가까이 사는 외손자들도 자주 돌본다. 맞벌이하는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딸의 형편을 모르는 척할 수가 없어서다.
    전남 고흥이 고향인 그는 어렵게 공부한 끝에 경찰간부후보생 제25기로 입문, 익산ㆍ부안 등 7곳에서 경찰서장을 지냈다. 30여년 경찰로 지내다 2009년 정년퇴직하고 나서 여러 자리를 제안받았지만 모두 뿌리쳤다. 남은 삶은 손주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다. 전주의 명산인 황방산 자락에 터를 잡아 전원주택을 지어 아들 내외와 함께 산 것도 오롯이 손주를 위해서였다. 손주들에게 자연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신씨는 “동기 중에는 더 높은 곳으로 진급하거나 다른 자리에서 일을 더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며 “손주를 돌보며 그들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일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겼다”고 말했다.
    “젊은 날, 경찰 간부로 일하면서 지방 여러 곳을 떠돌았어요. 너무 바빠서 가족을 챙길 여유가 없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뭐 그렇게 사는 게 바빴는지 모르겠어요. 늘 저를 이해해주고 너그럽게 기다려준 가족과 노후를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은퇴 후 그의 삶은 오롯이 손주로 채워졌다. 제 몸 부서져도 기꺼이 손주를 위해 헌신하겠노라 다짐한 계기가 있었다. 손녀 휘수가 태어나 넉 달쯤 된 어느 날이었다. 날만 새면 아이와 눈을 맞추던 신씨는 잊지 못할 신비로운 경험을 했다. 할아버지를 바라보던 아이가 작은 입을 조심스럽게 벌리고서는 ‘하빠’라는 말을 내뱉었던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한 말이 아빠도 엄마도 아닌 하빠였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감동적이었다고. 그 이후 손주들은 지금까지 그를 ‘하빠’로 부른다. 그는 “그것은 결코 우연히 한번 스쳐간 말이 아니라 아이가 할아버지라는 존재를 확실히 알고 부른 호칭”이라며 “그 이후 노년을 아이들의 하빠로 살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신씨의 손주 사랑은 지극하다. 부인도 놀랄 정도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저렇게 손자를 사랑하는 할아버지가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라는 말도 듣는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옆에서 간호하느라 날밤을 새고,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놀아주는 것은 기본이다. 아이들 코가 막히면 직접 코도 빨아준다. 수건이나 종이로 닦다 보면 코가 헐까 봐 걱정돼서다. 요즘도 손녀들은 콧속이 답답할 때면 할아버지를 찾아와 “하빠, 코 빨아주세요”라고 코를 들이댄다. 그리고 신씨가 코를 빨아주고 나면 “하빠가 코 빨아주니까 개운하다”며 흡족해한다. 신씨는 “물론 그 방법이 위생상 그리 좋지 않을지는 몰라도 손주를 사랑하는 그 지순한 마음은 세상 그 어떤 약과도 비교할 수가 없다”며 “저에게 사랑을 베풀어준 할머니의 방식을 되돌려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손주를 절대 수직적으로 대하지 않는다. 늘 하나의 독립적 인격체로 존중해준다. “아이들의 능력은 무궁무진해서 시간을 두고 기다리면 스스로 잘 성장할 수 있다”며 “어른들의 잣대로 아이를 혼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이런 사랑 덕분에 아이들은 지금도 ‘하빠’만 찾는다. 아이에게 매여 있는 삶이 지루하거나 힘들지는 않을까. 그의 대답은 단호하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는 것. 그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애틋한 인연으로 만났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며 “손주 돌보기를 인생의 마지막 소명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함께 살던 맞아들 부부가 집 근처로 분가한 상태인데, 사실 분가가 큰 의미가 없어요. 아이들이 ‘하빠’ 보고 싶다며 저희 집에 매일 와서 온종일 있기 때문이죠. 제가 아프기라도 하면 ‘하빠 아프지 말고 거북이처럼 150살이 될 때까지 살아야 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은 하빠’, ‘하빠랑 결혼할거야’라고 해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에요. 아이를 키우는 것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하지만,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얻는 것이 많습니다.”
    신씨는 휘수가 3살 무렵부터 육아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꽃을 보았으니 꽃이 지기 전에 그 예쁜 모습을 그려두고 싶어서”다. 평소에도 글 쓰는 것을 좋아해 한국경찰문인협회장까지 맡은 그는 손주들과 함께 한 일상을 빼곡히 일기에 기록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육아일기를 쓸 계획이다.
    “저는 육아의 기술에 있어서는 서툴기만한 조수에 불과해요. 할머니를 따라갈 수가 없지요. 다만 손자를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애틋한 마음을 그냥 담아주기가 너무 아쉬워 어설픈 손씨지만 이렇게라도 표현하고 싶었어요. 끊임없이 엉뚱한 말과 내뱉고 귀여운 몸짓을 하는 손주들의 일상을 글로 옮기느라 오늘도 아이들의 뒤를 즐겁지만 숨 가쁘게 쫓아다니고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힘들 때 이 글을 통해 조금은 격려를 얻었으면 좋겠어요. 본인들을 정말 많이 사랑한 할아버지가 있었다는 것만 알아도 좋겠습니다.”
    그의 육아일기가 ‘하빠의 육아일기’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출간되면서 많은 조부모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언론 인터뷰나 강연 요청도 들어왔다. 그는 “그만큼 저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조부모들이 많다는 것”이라며 “그들이 제 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육아 때문에 고민인 조부모에게 과도한 걱정은 불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행복의 비밀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이다’라는 명언이 있어요. 이 말처럼 육아를 하는 것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쉽지는 않지만, 그 과정 자체를 즐기고 사랑하면 좋겠어요. 과도하게 아이에게 잘해줘야 한다는 부담감에서도 벗어날 필요가 있죠. 아프리카에 ‘노인은 세상의 도서관’이라는 속담이 있어요. 아직 삶의 경험이 부족한 부모보다 우리 같은 조부모들이 삶의 지혜가 훨씬 많지요. 아이들과 대화를 통해 이런 경험을 들려주는 것만도 교육적으로 충분히 값어치 있는 것이라 생각해요. 조건 없는 사랑을 주는 것은 물론 당연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