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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 습관' 살려 전공 상담심리로 선택
나란볼락(32·몽골)씨는 가톨릭대 유학생 사이에서 ‘왕언니’로 통한다. 20대 초·중반이 대부분인 여느 외국인 유학생에 비해 다소 많은 나이 때문이다. 몽골에서 대학(몽골어 전공)을 졸업한 후 몽골어 교사로 일하던 그는 우연히 알게 된 한국인 신부의 추천으로 한국 유학을 결심하게 됐다.
"제가 일하던 다르항시(市)에 돈보스꼬 수도회가 운영하는 청소년 교육센터가 있었어요. 그 곳에서 10년째 몽골 학생을 대상으로 봉사와 선교 활동 중이신 이호철 신부님의 번역 작업을 돕게 됐죠. 외국 서적을 몽골어로 번역해 아이들에게 보급하는 사업을 하고 계셨는데 몽골어 감수를 맡아줄 사람이 필요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이 신부는 나란씨에게 "한국에서 공부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교사로 일하며 아이들을 살갑게 보살피는 나란씨에게서 상담교사의 자질을 본 것. 이 신부는 “머지않아 몽골 청소년에게도 심리 상담사가 필요해질 것”이라며 그를 설득했다.
“원래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편이에요. 교사로 일하면서 '아이들과 상담할 때 전문 지식을 갖추면 좋겠다'고 느끼던 차이기도 했고요. 잠시 고민했지만 두 번 다시 오기 어려운 기회란 생각에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나란씨가 결정을 내리자마자 이 신부는 기금 마련에 나섰다. 수도회와 교회 단체를 통해 후원회를 조직, 그를 도운 것. 결국 그는 이 신부를 비롯한 여러 사람의 도움 덕에 10년간의 교사 생활을 잠시 접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
◇"교수 꿈 이루려면 1분1초가 아까워요"
나란씨는 가톨릭대학 성심교정(경기 부천)에서 1년간의 어학연수를 끝내고 같은 대학 심리학과 3학년에 편입했다. 굳이 편입을 택한 이유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서"다. “몽골 현지에서 상담심리 전문가를 양성하는 게 제 꿈이거든요. 그러려면 교수가 돼야죠. 빨리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었습니다."
적지않은 나이도 나란씨를 서두르게 한 이유 중 하나였다. 7남매 중 둘째인 나란씨는 동생들을 뒷바라지하느라 결혼도 미뤘다. 아버지 수입만으로는 동생들의 대학 등록금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 요즘도 그는 매일 새벽 2시까지 공부하다가 잠이 든다.
“3학년에 편입했기 때문에 졸업하려면 매 학기 전공 과목을 6개씩 들어야 해요. 주중엔 매일 한 과목씩 그 주차 강의 내용을 익히기로 마음먹었죠. 일요일엔 주간에 공부한 내용을 복습하고요. 2년째 공부‘만’ 하면서 살고 있어요.”(웃음)
나란씨가 이렇게 강행군할 수 있는 비결은 탄탄한 한국어 실력이다. 일반적으로 유학생은 한국어능력시험 3급 이상을 취득하면 대학 입학 자격을 얻을 수 있지만 나란씨는 5급을 따냈다. (국립국제교육원이 주관하는 한국어능력시험은 총 6개 등급으로 구분되며 숫자가 커질수록 높은 수준을 의미한다.)
“어학연수 기간 동안 남보다 좀 더 열심히 했어요. 집에 있을 땐 매일 TV를 틀어놓고 한국말을 들었죠. 시간 날 때마다 신부님께서 소개해주신 분들을 찾아가 조언도 들었어요. 전부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라 제 언어 습관에 잘못된 점이 있으면 하나하나 고쳐주셨죠. 하루 24시간 내내 한국어를 공부한 셈이에요. 면접 당시 만난 한 교수님은 제게 ‘그 정도 어학 실력이면 심리학과 공부에 별 문제 없을 것’이라며 격려해주셨어요.” -
◇"난생처음 봤던 바다 평생 잊지 못할 것"
나란씨는 “가끔 한국 학생들 보면 즐기면서 공부하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다”고 말했다. “강의 내용 따라가려면 친구 만날 시간이 없어요. 기왕 유학 왔으면 한국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한국 문화도 접하는 게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어 아쉽죠. 하지만 지금 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공부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유학 생활 중 가장 즐거웠던 추억으로 꼽는 건 '유학생 친구들과 바다 보러 갔던 경험'이다. “심리학과 교수님 한 분이 유학생 친구들만 모아서 바다 구경을 시켜주신 적이 있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다를 본 거라 정말 신기했죠. 몽골엔 바다가 없거든요.”
어학연수 초기 같은 반 친구들을 모아 학교 근처 주점에서 회식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다. 그날 이후 나란씨는 동기들 사이에서 ‘왕언니’로 불리기 시작했다.
“다들 어린 친구들이어서 그런지 학기 초 서로 쉽게 친해지지 못하더라고요. 제가 앞장서서 동기들을 데리고 학교 앞 술집으로 쳐들어갔죠. 한국말 서툰 유학생 열댓 명이 몰려가 주문하는데 말이 안 통해 혼났어요. 그래도 덕분에 다들 스트레스도 풀고 많이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남보다 바쁜 일정에 피곤할 법도 하지만 나란씨는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즐겁다”고 말했다. "한국에 오게 된 건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해요. 신부님께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덕에 학비 걱정도 없이 공부하고 있고요. 한국 와서 만난 모든 분이 다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편하게 지내고 있어요. 제가 받은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열심히 공부해서 빨리 제 꿈을 이루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매일 새벽 2시까지 공부하는 '독한 왕언니'
김구용 조선에듀케이션 기자
kky902@chosun.com
[나의 한국 유학기] ④나란볼락(가톨릭대 심리학과 3)
-교사로 재직 중 한국인 신부 추천으로 유학 결심
-상담심리 전공 후 상담교사 양성에 힘 쏟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