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부터 밥 냄새 솔솔... 이런 학교 보셨어요?
남미영 조선에듀케이션 기자 willena@chosun.com
기사입력 2012.10.31 14:59

국내 최초 '아침 급식' 시행 경기 시흥 서해고 이야기

-재학생 160명, '자판기 빵' 대신 '밥-국-반찬' 선택
-조성초 교장 "힘들어도 보람... 동참 학교 증가 기대"

  • "출근 첫날, 가장 먼저 눈에 띈 풍경은 자판기 앞에 줄 서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충격적이었죠." 올 3월 경기 시흥 서해고로 발령 받은 조성초 교장은 부임 직후 줄곧 학생들의 아침 식사 해결 방안을 고민해 왔다. 그 노력이 빛을 본 걸까? 지난 22일 서해고는 국내 최초 '아침 급식 지급 시범 고교'로 지정됐다.

    "우리 학교엔 매점이 없습니다. 식사를 거른 아이들은 늘 자판기에서 빵이나 과자를 사 먹으며 허기를 달랬죠. 처음엔 매점을 만드는 방안도 고려했어요. 그런데 암만 해도 든든한 '한 끼 밥'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요즘 아침 식사 도중 만나는 학생들의 표정이 전에 없이 밝아 '(아침 급식 하기로) 정말 잘 결정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 교내 급식실에서 아침 급식용 식사를 받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는 경기 시흥 서해고 학생들. <사진 제공 서해고>
    ▲ 교내 급식실에서 아침 급식용 식사를 받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는 경기 시흥 서해고 학생들. <사진 제공 서해고>
    ◇'자판기 아침 식사'는 이제 그만!

    "점심 시간이 다가오면 배가 고파 수업에 집중하기가 어려웠어요. 요즘요? 점심 시간 알리는 종이 울리기 전까지 전혀 그런 생각이 안 들죠."
    이혜란(1년)양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일 아침 학교 자판기에서 빵과 우유를 사서 먹었다. 고교 진학 전까지만 해도 아침을 거른 적이 없었던 그는 이른 등교 시간을 맞추느라 아침 식사를 포기했다. "오전 7시 좀 넘으면 학교에 도착해야 하거든요. 잘 시간도 부족한 지경이어서 아침 식사는 꿈도 못 꿔요. 아침을 '먹기 싫어' 거르는 친구는 많지 않을 걸요."

    아침 급식 때 배식 당번으로 활약 중인 김수연(2년)양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세요. 두 분 다 일찍 출근하셔서 밥 차려 달라고 말씀 드리기가 죄송하더라고요. 혼자 챙겨 먹기도 쉽지 않아 습관처럼 거르고 다녔어요. 학교에서 아침 급식을 한다기에 서둘러 신청했죠. 학교에서 아침 급식을 시작한 이후 지각 횟수도 크게 줄었습니다."

    김종민(3년)군도 아침 급식을 신청했다. 종민군의 어머니 최연이(45)씨는 "몇 달만 있으면 졸업이어서 (급식 신청 여부를) 망설였지만 아이가 학교 다니는 동안만이라도 아침을 거르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에 신청했다"고 말했다.

    급식 시행 첫날, 학부모 자격으로 학교에 왔던 그는 급식 수준에 대해 "대체로 만족한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밥과 찌개, 김치 등 든든한 기본 식단에 후식까지 제공되는 걸 보고 마음이 놓였어요. 다만 후식으로 나온 사과 주스를 보곤 '진짜 사과가 나왔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싶었죠."

  • ◇제반 환경 갖춰 교육청 예산 확보

    서해고가 아침 급식 시행 시범 학교로 선정된 것과 관련, 조성초 교장은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겸손해 했다. "서해고는 제 첫 교장 부임 학교여서 유난히 애착이 컸습니다. '아침 못 먹는 학생'들이 안타까워 뜻을 함께하는 선생님 몇 분과 힘을 합쳐 아침 급식을 추진했어요. 때마침 그 즈음 경기도교육청이 조식 후원 사업을 시행한다는 걸 알게 됐고, '이번에 안 되면 우리끼리라도 진행하자'는 각오로 예산 지원을 신청했어요. 결과가 좋아 정말 다행이었죠."

    경기도교육청이 아침 급식 사업용으로 서해고에 지원하는 예산은 연간 3000만원. 이와 관련, 일부에서 "학교 홍보하려고 공공 예산을 낭비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조 교장은 "시범학교에 선발되려면 제때 급식이 가능한 환경을 갖춰야 하고 그에 따른 준비 절차도 만만찮아 '단순 홍보용'으로 일을 만들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학교 차원에서 고교생에게 아침 식사를 제공하려면 하루 세 끼 급식이 가능한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새벽 배식이 가능한 조리원을 확보하고 식재료 보관 공간을 확장하는 건 기본. 조 교장은 "아침 급식 시간을 맞추려면 조리원을 새벽 4시에 출근시켜야 하는데,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어 3명 충원하는 데도 상당히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 ◇"좀 더 많은 학교 동참 기대합니다"

    2012년 10월 현재 서해고의 아침 급식 신청 인원은 170명. 교사와 교직원 분량(10명)을 제외한 순 학생 수는 160명이다. 끼니당 단가는 3200원 수준이다. 조 교장과 함께 아침 급식 시행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온 박성호(37) 교사는 "학생 부담을 줄이면서도 질 좋은 식사를 제공하려면 급식 신청자가 지금보다 좀 더 늘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교내 홍보를 강화하는 한편, 메뉴의 맛과 질 향상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선영(23) 영양사는 아침 급식 메뉴 선정에 꽤 많은 공을 들인다. 밤 사이 긴 공복을 거친 후 이뤄지는 첫 식사이기 때문. "잠자는 내내 쉬었던 위를 아침까지 계속 비워두면 점심 때 폭식하기 일쑤"라며 "아침 식단은 위에 부담을 덜 주기 위해 가급적 부드럽고 소화 잘 되는 음식으로 구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교장은 아침 급식이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요즘도 하루 1회 이상 급식소 냉장고를 열어보며 급식용 식재료의 품질을 꼼꼼하게 챙긴다. "밥상머리 교육, 물론 좋죠. 하지만 요즘 세상에 그게 어디 쉽습니까. 그렇다면 최소한 성장기 아이들에게 영양적 결핍은 느끼지 않도록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침 급식 시행 학교가 늘면 조리원이나 영양사 수요도 늘어 일자리 창출 효과도 있을 거예요. 좀 더 많은 학교가 아침 급식 시행에 동참해주길 기대합니다."

    시흥=남미영 조선에듀케이션 기자 willen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