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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산격중학교는 불과 11년전만 하더라도 학교폭력 심의만 27건에 달하는 일명 ‘문제아 학교’로 불렸다. 하지만 현재는 3년 연속 교육부 장관상을 수상하는 등 ‘학교폭력 제로(ZERO) 학교’로 불리며 대표적인 모범사례로 꼽힌다. 이처럼 산격중학교가 탈바꿈한데에는 임민식 선생님의 역할이 크다.지난 2013년도부터 산격중학교에서 근무 중인 임민식 선생님은 2017년 학교 부적응 학생을 대상으로 극단 ‘반창고’를 만들었다. 임 선생님은 극단을 통해 아이들과 소통하고, 학교폭력 예방 문화를 확산하는 등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Q. 최근 신한금융그룹이 주관한 희망영웅 수상자에 선정됐어요. 소감 한마디 부탁드릴게요.연락을 받고 처음엔 의아했던 것 같아요. 사실 해당 프로젝트에 대해 전혀 몰랐거든요. 상을 받으니까 기분은 매우 좋았습니다. 동시에 ‘이게(학교폭력 예방) 내가 앞으로 평생 해야 될 일이구나’라는 책임감이 높아졌어요. 이번에 상을 받으면서 다시 한 번 제가 가야 할 길을 명확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영웅이잖아요. (하하) 영웅은 뭔가를 지키고, 뭔가를 더 좋게 만들어가야 하는 입장이니까요. 학교폭력에 있어서 제가 할 수만 있다면 죽을 때까지 계속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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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학교폭력에 관해서 앞서 여려차례 상도 받았잖아요.개인상은 처음이에요. 교육부에서 받은 3번의 장관상도 모두 아이들이 받은 상이에요. 아이들의 인식을 바꾸고, 학교폭력을 예방하고자 여러 기관에 아이들의 활동을 보고하고, 알려왔죠. 상을 받고자 행한 건 아니지만, 아이들이 상을 받으면서 스스로 자부심이 생긴 것 같아요. 덕분에 ‘우리 스스로 학교 폭력 예방을 위해서 노력했고, 그 결과 이런 상을 받았다’라는 분위기가 계속해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어요. 아이들 스스로 ‘우리 학교에서 가장 잘 지켜나가고 가장 열심히 해야 되는 활동이 학교 폭력 예방이다’라는 게 각인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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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교사가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벌써 교단에 오른지 16년째네요. (웃음)저 역시 중학교 때 학교폭력 피해 경험이 있어요. 당시에는 학교폭력 때문에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고, 학습도 많이 부진했죠. 되돌아보면 중학교 때는 선생님의 관심에서 많이 벗어나 있던 학생이었던 것 같아요. 다행히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두명의 선생님(고등학교 1학년 때 임성훈 선생님, 2학년 때 김주환 선생님)을 만나게 됐고, 덕분에 변할 수 있었습니다. 두분 모두 관심 밖 아이를 그냥 버려두신 게 아니라 계속 뭔가를 시키셨어요. 꾸준히 임할 수 있는 역할을 부여하고, 역할을 수행할 때마다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셨죠. 선생님들의 관심은 제가 다시 공부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나도 커서 두분의 선생님처럼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또 우연치 않게 고등학생 때, 대안학교로 견학을 갔어요. 그 학교에 문제가 많은 청소년들이 집단으로 모여 있던 걸 봤죠. 비슷한 또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친구들과 친해졌어요. 이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니 대부분 다 상처가 있는 아이들인 거예요. 가정이나 사회에서 받은 피해가 학교에서 가해 형태로 드러났던거죠. 그 모습을 보면서 ‘나중에 커서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아이들을 가르쳐주는 데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됐어요.Q. 그 당시 경험이 교사가 된 계기는 물론, 학교폭력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게 된 계기도 된거에요?그렇죠. 청소년 시기에 겪은 경험들이 지금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는 관점을 만들어준 것 같아요. 어릴적 나를 지지해 줬던 어른들이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때 저를 응원해준 어른들처럼 아이들을 바라볼 때 색안경 끼지 않고, 똑같이 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Q. 발령 당시, 산격중학교의 분위기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면서요?산격중학교에 발령받았다고 하니 주변에서 ‘큰일났다. 우야노’라며 걱정할 정도였어요. 그 당시 산격중학교는 대구에서 ‘아이들 지도가 잘 안되는 학교’라는 이미지가 있었어요. 실제 마주한 학교는 생각보다 더 심각했습니다. 아이들끼리 파벌을 만들어 다투는 것은 물론, 수업시간인데 교무실 소파에서 자거나 떠들며 노는 아이도 많았어요. 솔직히 당시에는 ‘무슨 이런 학교가 다 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사건 사고도 정말 많았어요. 학교 폭력도 27건에 달했고, 생활 교육위원회도 3~40건에 이를 정도로 분위기가 매우 안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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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듣기만 해도 학생들 대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학생들에게는 어떻게 다가갔나요?발령 첫 해인 2013년에는 도무지 어떻게 대응해야할 지도 모르겠고, 분위기를 파악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냥 넘어갔던 것 같아요. 다음해인 2014년 교감선생님께서 선생님들은 따로 불러서 우리 아이들을 위해 뭔가를 같이 해보자고 독려하셨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게 뭐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오랜 고민 끝에 선생님과 아이들 간 관계회복이 우선이라는 결론을 내렸죠. 선생님들이 먼저 학생들과 친해져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최대한 많이 놀았어요. (웃음) 학생들과 많이 놀고, 필요하면 함께 시간을 보내고, 밖으로 나도는 아이들을 데려와서 또 함께 놀고. 그러다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한 취지로, ‘무박캠프’도 진행하게 됐습니다.Q. 무박캠프요?학교에서 하루를 보내는 캠프에요. 처음에는 학급단위로 시작했어요. 지도가 가장 어려운 학급을 선정해서 해당 반 담임선생님과 함께 아이들 부모님께 무박캠프에 대한 허락을 받았습니다. 캠프는 금요일 수업을 마친 후 저녁을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보내고 다음날 아침에 집으로 돌아가는 방식이었죠.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니 분위기가 너무 좋아진거에요. 눈에 띄게 좋아진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무박캠프를 확장시키게 됐고, 학년단위로 시행하게됐습니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아이들은 선생님이 자신들을 괴롭히는 존재가 아니라 이야기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걸 인식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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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극단 ‘반창고’도 무박캠프의 연장선으로 진행된 건가요?무박캠프를 2년 정도 진행했어요. 이후 2017년 교육복지사 선생님이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면서 1년간 제가 대신해서 복지 업무를 맡게됐죠. 복지 대상자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고민하다가 극단 ‘반창고’가 나오게 됐습니다. 제가 대학 시절에 뮤지컬 영상 연출을 한 적이 있거든요. 그때 경험을 발판 삼아 아이들과 뮤지컬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죠. 단원을 뽑을 때,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아이들을 뽑는 게 아니다 보니 시작부터 정말 많이 어렵더라고요. 마음이 아프고, 어려운 아이들과 더불어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를 갖춘 친구들까지 고루 함께하도록 노력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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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처음엔 학생들의 참여도가 높지 않았다고요?처음 모집 공고를 붙였을 때, 신청자가 거의 없었어요. 사실상 직접 아이들 한명, 한명 찾으러 다녀야 했죠. 다행히 아이들과 이미 소통해왔던 기반이 있어서 아읻의 성향이나, 문제를 파악하기 쉬웠습니다. 직접 아이들에게 권유도 하고, 어렵게 단원을 꾸렸는데 이후 지속이 정말 어려웠어요. 이런저런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다 보니 활동 중 무기력해지는 경우도 있고, 극단 활동을 빼고 놀러가는 경우도 많았어요. 꾸준히 설득하고, 계속 찾아가고, 직접 데려오기도 했어요.Q. 연습이 정말 쉽지 않았겠어요.처음엔 짧게 10분 정도 작품을 목표로 했는데, 그것조차도 정말 어렵더라고요. 다행히 대학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뮤지컬 연출자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연출자 분이 소속된 극단이 함께 공연을 만들면서 러닝타임 40~50분에 달하는 진짜 공연을 할 수 있었죠. 되도록 공연 내용도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신경을 정말 많이 썼어요. 기왕이면 이 활동을 통해 아이들 스스로 자신이 누군지 인식하길 바랐습니다. 자신이 누군지 알아가야한다는 것을 전달하고자 작품 명도 ‘후 엠 아이(Who am I)’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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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공연을 마치고 나서 아이들의 반응은 어땠나요?다들 벅차했어요. 자신들이 직접 만들어낸 결과물에 뿌듯해하기도 하고요.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가 있습니다. 몸무게가 110kg에 달하는 친구였어요. 무기력하고, 수업시간엔 항상 잠만 자는 아이였죠. 공연이 끝나고나서 그 친구가 꿈이 생겼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꿈이 뭐냐고 물었죠. 그 친구가 답하기를 어릴 적부터 군인이 꿈이었는데, 자신이 몸무게가 많이 나가다보니 포기를 했었대요. 주변에서도 ‘네가 무슨 군인이야’라고 말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공연을 하면서 자신이 누군지 알게 됐고,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하더군요. 그러더니 이 친구가 정말로 몸무게를 68kg까지 감량했고, 태백에 있는 군사고등학교에 합격했어요. 저 역시도 그 친구를 보면서 굉장히 뿌듯했고, 지금도 그 학생과 꾸준히 연락하고 있습니다.Q. 그럼 진정한 사과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요?일단 학교폭력 상황이 발생하면,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각각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그리고 양쪽 부모님들과도 만남을 가지죠. 처음부터 양쪽 부모님을 만나게 하기 보다는 끊임없이 소통한 후에 양쪽이 한번은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고 이후에 갈등 중재자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이때 양측에 진실된 감정을 끌어내고 전달하는 게 중요해요. 가해학생과 부모님은 사과를 전하고, 피해학생과 부모님은 속상한 부분을 털어놓는거죠. 그렇게 이야기를 쏟아내다 보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 여러차례 조율을 하다보면 학교폭력 심의로 넘어가지 않고 제대로 된 사과를 받는 거로 끝나게 되는 거죠.한번은 갈등중재 후 피해학생에게 ‘기분은 어때?’라고 물은적 있어요. 그 피해학생은 ’사과받으니까 이제는 조금 편해요. 더 이상 저 친구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답하더라고요. 심의로 가버리면 처벌만 받았지 두 아이의 갈등이 해결된 게 아니잖아요.또 한번은 가해학생이 사과했을 때, 피해학생 측 학부모님이 가해학생을 안아준 적도 있어요. 당시 가해학생을 안아주면서 피해학생 측 학부모님은 ‘너도 많이 힘들지. 나도 많이 힘들었단다. 우리 아이도’라면서 등을 토닥이는데 가해아이가 펑펑 울기도 했죠. 눈물을 흘렸다는 건, 진정한 반성을 뜻하는 거잖아요. 그제서야 해결이 됐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Q. 실제 마음을 보듬기 위한 노력이네요.그렇죠. 진정한 반성이 이뤄진 가해학생은 더 이상 가해 행위를 하지 않아요.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너무 잘 알고 있고, 스스로 깨우치죠. 중재자의 입장으로서 양측을 계속 소통할 수 있도록 돕고, 이해관계 속에서 마음의 상처를 회복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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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공감 프로젝트’로 여러 학교를 방문했어요. 실제로 여러 학교를 다면서 본 학교 폭력의 실상은 어땠어요?총 10개 학교를 방문했어요. 사실상 학교마다 분위기는 다 달랐습니다. 분위기는 달랐지만, 1학년들을 대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 하면서 느꼈던 건 ‘학교폭력이 예방 가능하구나’였어요. 계속 관심을 가지고, 예방에 참여하면 충분히 학교폭력도 예방이 가능하다는걸 아이들을 보면서 배웠습니다. 실제로 대구교육청 관계자 분이 공감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학교의 학교폭력 사례가 현저히 줄었다고 말 하더라고요. 결과를 듣고나니 예방에 신경을 쓰는 것과 안 쓰는 것에 있어 큰 차이가 있다는 걸 몸소 느꼈어요.Q. 최근에 드라마 ‘더글로리’로 학교폭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요. 이 드라마를 보는 마음이 남달랐을 것 같아요.학교 폭력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이 가장 원하는 건 사과예요. 앞서 말씀도 드렸지만, 진정성 있는 사과를 원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은 거죠. 아이들이 어릴적 받은 상처가 성인이 되어서까지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꼭 올바르고, 합당한 중재가 필요해요. 주변의 관심도 중요하고요. 아이들에게 안전한 어른이 되어 줄 수 있는 그런 선생님들이 많이 있다면, 학교폭력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이 조금 더 편안해지지 않을까 싶어요.Q. 드라마도 그렇고, 요즘 학교폭력 사례를 보면 유독 잔인하게 느껴져요.제 경우에는 최근 심각한 케이스를 직접 목격한 적은 없어요. 하지만 점점 학교폭력의 양상이 변해가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사이버 폭력을 들 수 있어요. 예전에는 학교폭력이라고 하면 대면 폭력밖에 없었거든요. 만나서 괴롭히기때문에 집에 가버리면 더 이상 피해자를 괴롭힐 수 있는 수단이 없었죠. 지금은 학교에서의 괴롭힘이 집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는 세상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피해자들이 더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학교폭력은 다양한 방법과 모습으로 변해갈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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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앞으로 학교폭력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나가야 할까요?아이들에게 안전한 어른이 필요해요. 특히 선생님은 안전한 어른이어야 하고요. 청소년 시기 아이들은 부모님하고 소통 시간이 많이 없을 거예요. 부모님보다 친구와 소통을 가장 많이 하고, 그 다음이 아마 선생님일거에요. 내 주변에 온전히 나를 바라봐주는 어른, 즉 선생님이 있다는 것만으로 아이의 인생이 완전히 바뀔 수 있습니다. 우리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안전한 어른이 되어 준다면, 아이가 싹을 내리고 나중에는 큰 나무가 될 수 있을 거에요.Q. 끝으로 선생님의 목표는 무엇일까요?최근에는 공부를 다시 시작했어요. 현재 영남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교육 행정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학교폭력에 대해서도 제도적으로 계속 개편이 되잖아요. 열심히 공부를 해서 정책의 방향이 지금보다 더 아이들을 위한 쪽으로 향할 수 있도록 일조하고 싶습니다.글=장희주 조선에듀 기자(jhj@chosun.com) #조선에듀
[인터뷰] ‘학폭제로’ 산격중학교의 숨겨진 영웅, 임민식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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