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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어(漢字語)의 속뜻 제대로 알면 순우리말도 품위 있게 말할 수 있어”... 한글학자와 한자학자의 만남(6/6) [조선에듀]

2022/12/02 02:53:12

제6부: 한글, 바로 알아야 교육이 살고 나라가 산다(2) 
 
“학생들은 읽을 줄 몰라서가 아니라 수없이 많이 등장하는 한자어의 속뜻을 몰라 현기증을 느끼고 있다”

전광진 우리는 시대적 사명은 어쩔 수 없으니 그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제가 아무리 한자를 좋아하고 한자 문제를 좀 안다고 하더라도 ‘한글 전용 시대’를 거역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의 바퀴를 거꾸로 돌릴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한글 전용에 따른 폐해를 그냥 덮고 지나가면 학자적 양심에 어긋나는 것 같습니다. 한글 전용은 음을 잘 알게 하고 읽기를 잘하게 할 뿐입니다. 한글 전용 교육은 학생들에게 소리 정보만 잔뜩 제공하고 시험에서는 뜻을 잘 아는지를 점검하는 얼토당토않은 교육인 셈입니다. 학생들은 읽을 줄 몰라서가 아니라 수없이 많이 등장하는 한자어의 속뜻을 몰라 현기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해식애(海蝕崖), 파식동(波蝕洞), 사주(沙洲), 석호(潟湖) 같은 한자어가 모스부호나 다름없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한글 전용 교과서로 공부하는 우리나라에서는 한자를 혼용하는 일본과 달리, “선(先) 한자어-후(後) 한자” 학습이 효과적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약 30년 전부터 그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한글 전용 시대가 도래되어 한자는 자취를 감추었지만, 한자어는 안 쓰래야 안 쓸 수 없고 각급 학교 교과서에 석류알처럼 송송 박혀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대적 사명이자 학생들을 구제하는 길이라 생각하였지요. 

한자의 속뜻이 의미 힌트가 된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LBH교수학습법’(일명 ‘속뜻학습법’)을 개발하고(2006년) 이 학습법을 일상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우리말 한자어 속뜻사전’(2007년, 15년 작업으로 완성)을 편찬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초등학생들도 속뜻학습으로 어휘력, 문해력, 학업 능력을 높일 수 있도록 ‘속뜻풀이 초등국어사전’(2010)을 만들게 되었고, 2019년부터는 4종 사전을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여 구글 플레이 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에 탑재해 놓았습니다. 휴대전화에 있는 ‘속뜻사전앱’만 톡톡 치면 한자어의 속뜻을 바로바로 알 수 있게 해놓았습니다. 

'선(先) 한자어-후(後) 한자' 학습 로드맵이 완성되어 한자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도 누구나 한자 속뜻을 힌트로 삼아 한자어를 쉽게 익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상이 저의 ‘참신한 한자 연구’의 결과물입니다. 요약하자면, 어려운 처지에 놓인 학생들의 학업 부담을 줄여 줄 수 있는 학습 인프라를 구축하고 최신 어플리케이션까지 완벽하게 갖추게 되었습니다.

사회자 지금 벌써 90분이 되어 갑니다. 그래서 제가 최대한 30분만 더할까 합니다. 우선 권재일 교수님의 말씀을 좀 청해 듣고 가볼까요? 권 교수님 지금까지 들으셨던 말씀 중에서 혹시···

권재일 잠깐, 진행 발언하겠습니다. 제가 처음 좌담회에 관해 사전 협의를 할 때 전광진 선생님께서 한 시간 이야기하자고 했는데요.

전광진 네!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권재일 벌써 20분이 지났고, 사회자 선생님님께서 또 30분을 더하자 하시니··· 조금 절충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사회자 네, 네. 알겠습니다. 가급적 빨리 마무리하지요. 

“국어교육에서 어휘 교육이 대단히 중요!”

권재일 저는 전광진 선생님의 한자어, 한자 교육에 대한 의견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겠는데요. 그러나 한자어 교육의 필요성,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가, 거기에 대해서는 제가 교육 전문가가 아니라서 논평을 할 수 없습니다만, 전광진 선생님께서 제시하신 교육 방법은 훌륭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처음 들어 본 방법이라서 제 생각하고 어떻게 다른지 그건 제가 아직 생각을 못 해 봤는데, 일단 어휘 교육을 위해서, 다시 말하여 국어교육에서 어휘 교육이 대단히 중요하지 않습니까?

전광진 예! 상당 부분 공감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권재일 어휘 교육을 위해서는 한자어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교육 방법, 이것은 대단히 필요하고, 그것이 어떤 방법이 되어야 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이미 선생님께서 시작하셨으니까 그것에 대한 좀 더 확고한 연구 방법을 개발해서 교육 현장에 바로 적용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전광진 예! 동의와 건의에 감사드립니다. 

사회자 네, 고맙습니다. 우리 전 교수님, 지금 권재일 교수님께서 진행 발언이라고 하시면서 말했지만 원래 1시간만 하는 거로 알았는데 벌써 90분이 돼 가니까. 한 6분 안에 마쳤으면 하시는 바람인 것 같습니다. PPT가 아직 많이 남아 있긴 하지만 꼭 하시고 싶은 핵심적인 것 한 두세 가지만 말씀해 주시고 권 교수님 말씀 듣고 마치는 쪽으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서···

전광진 예! 빨리빨리 진행하겠습니다.

사회자 네! 꼭 하시고 싶은 거 한두 가지 정도만.

“암기가 아니라 이해를 중심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전광진 예! 한자에 담겨 있는 의미 힌트(속뜻)을 최대한 활용하여 LBH (Learning by Hint) 교수학습법을 개발한 것은 암기가 아니라 이해를 중심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함이었습니다.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미국 스탠퍼드대학 로저 콘버그 교수가 내한하여 한 언론과의 인터뷰(2009년 4월 11일)에서 기자의 질문을 받고 이런 답을 하였습니다. “단순 설명이나 암기가 아닌 완벽한 이해를 위한 수업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라는 기사를 보고 깜작 놀랐습니다. ‘우리말 한자어 속뜻사전’을 출간하였을 때 조선일보 2007년 10월 30일자 보도 기사에서 “암기식 학습을 탈피하고 이해식 학습으로 바뀌게 하는 사전”이란 극찬을 받은 사실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LBH교수학습법과 속뜻사전이 노벨상 프로젝트의 초석이 될 수 있겠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한자어의 속뜻 알면 순우리말도 품위 있게 잘하게 돼”

초등학생 때부터 한자어의 속뜻학습을 하게 되면 ‘생각의 눈’을 뜨게 되고, ‘생각의 힘’이 생기고, ‘생각의 깊이’가 달라질 수 있는 학습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무는 뿌리가 깊어야 한다’는 용비어천가에서 유래된 것이니 누구나 다 잘 압니다. 그러면 사람은 무엇이 깊어야 할까요? 사람은 생각이 깊어야 하며, 생각이 깊자면 한자어 속뜻을 알아야 함을 초·중·고 학생, 교사, 학부모 특강 때마다 역설하였더니 많은 분이 공감의 박수를 보내 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한자어의 속뜻을 알면 순우리말도 품위 있게 잘 하게 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는 말을 순우리말로 달리 말 해보시라고 하면 여러분은 어떤 답을 제시하겠습니까? 답은 ‘뜨거운 마음으로 일하겠습니다’입니다. ‘뜨거울 열’(熱), ‘마음 심’(心)이 속뜻을 알면 쉬운 문제가 됩니다. 남을 위해서도 울기도 하는 사람은 마음이 뜨겁다는 증거입니다. 마음이 뜨거운 사람이 세상을 이끌어 갑니다. 

아울러, ‘왕대밭에 왕대 난다’는 속담 이야기도 간단히 들려 드리겠습니다. 우리 권재일 교수님께서는 안동의 반촌(班村) 출신으로 알고 있습니다.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났으니 왕대밭 출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학생이 훌륭하게 되자면 선생님과 부모님이 훌륭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자면 한글에 아울러 한자 지식도 있어야 합니다. 그런 선생님과 학부모를 위하여 엮은 책이 바로 ‘선생님 한자책’입니다. 우리 권재일 교수님께서 어떤 한자어를 만나더라도 형태 분석 능력이 있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한자 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이죠. 그렇죠. 전혀 안 했다면 그렇게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시중에 학생들을 위한 한자책은 무수히 많지만 정작 선생님을 위한 한자책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왕대밭 선생님을 위하여 한자책을 엮었던 것입니다. 

끝으로, ‘한자는 어렵다’는 고정 관념을 불식시키기 위한 자료를 하나 준비해 보았습니다. “山 / 뫼, 산 / mountain” 가운데 어느 것이 어려울까요? 한자가 어렵다고 하지만, 한자 한 글자는 단어 또는 형태소에 해당하는 의미를 나타내기 때문에 영어의 단어와 비교해 봤을 때 어려운지 쉬운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한자가 어렵다면 영어 단어가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며, 영어 단어 2,000개를 익히는 것이 ‘식은 죽먹기’라면 한자 2,000개를 학습하는 것도 ‘땅 짚고 헤엄치기’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한자를 두고 임자 운운하는 예를 흔히 봅니다. 國語라고 한자로 써놓은 단어는 중국어인지 한국어인지 일본어인지 알 수 없습니다. 자형이 아니라 자음을 통하여 국적이 드러납니다. [꾸어위]라 읽으면 중국어가 되고, [국어]라 읽으면 한국어가 되고, [고꾸고]라 읽으면 일본어가 됩니다. 

알파벳도 마찬가지입니다. nation을 [네이션]이라 읽으면 영어가 되지만, [나시옹]이라 읽으면 프랑스어가 되고, [나띠온]이라 읽으면 독일어가 됩니다. 문자는 만들어 낸 사람, 또는 그 후손이 임자가 아니라, 잘 알고 잘 사용하는 사람이 임자입니다. 알파벳, 아라비아 문자 등이 그런 것처럼! 한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종대왕이 창제하였으니 세종대왕의 후손인 우리만이 임자라고 하면 한글을 한반도에만 꽁꽁 묶어 놓는 결과가 됩니다. 세계 그 어떤 민족의 사람들도 한글의 임자가 될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이 ‘참다운 한글 사랑’의 주역이 될 수 있습니다. ‘참신한 한자 연구’의 결과물을 소개할 자료가 더 많이 준비되어 있습니다만, 시간 관계상 이만 줄입니다. 혼자 너무 많이 떠들어서 송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사회자 고맙습니다. 그러면 우리 권 교수님의 마무리 말씀 청해 듣겠습니다.

“한자어 이해 교육을 위한 속뜻풀이 연구는 굉장히 흥미 있고 정말 필요한 과정”

권재일 예, 마무리 발언을 하겠습니다. 마무리 발언을 하기에 앞서서 방금 전광진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한자어 이해 교육을 위한 속뜻풀이 연구는 굉장히 흥미 있고 정말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말에 한자어가 있고 고유어가 있는데, 한 가지 분명히 말씀드릴 것은 저나 한글학회 입장이 한자어를 모두 없애자는 것이 아닙니다. 매우 어려운 한자어를 쉬운 한자어나 토박이말로 쉽게 바르게 바꾸어 쓰자는 것이지, 한자어 ‘학교’를 토박이말 ‘배움집’으로 고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오해가 없기를 바라고요. 

두 번째 지금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한자어를 어떻게 이해하도록 교육할 것인가 하는 방안, 물론 지금 전광진 선생님께서 시행하고 계시는지, 앞으로 시행하실 것인지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러한 방안을 더욱더 연구하시면 우리 국어 교육의 어휘 교육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단순하게 한자를 쓰자, 한자를 가르치자, 이런 주장이 아니라, 조금 더 전진적으로 한자어를 제대로 이해하도록 하자 하는 측면에서 저는 선생님께서 하시는 어휘 교육 방법을 적극 지지합니다. ‘학교, 학생, 학업, 학급, 학문’ 등의 ‘학’에는 ‘배우다’라는 뜻이 있음을 가르치자는 것이지, 물론 의도적으로 가르치지 않아도 연상 작용으로 저절로 습득합니다만, 어휘 교육을 위하여 ‘學’이라는 글자 모양을 가르치자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오늘 정말 뜻밖의 기회를 마련해주신 박남기 선생님과 전광진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또 이 밤에 늦은 시간인데, 늦은 시간에 지금 50명의 청중이 접속하고 있습니다. 대단한 열기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기획하신 박남기 선생님과 전광진 선생님의 학문과 인품을 보고 이렇게 많이 들어오신 것 같습니다. 저를 알고 오신 분을 아무도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한글날을 맞이해서 ‘한글’이라는 명칭의 올바른 사용, 다시 말해서 ‘한글’과 ‘한국어’와 혼동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 또는 그것을 우리가 승화시키는 어떤 방법을 모색하는 것을 제기한 것도 의미가 있고요. 그리고 우리의 글자 생활, 어휘 교육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안에 대해서 함께 논의해 보았다는 것에 대해서 한글날을 앞둔 오늘 개천절 저녁에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고맙습니다.

사회자 아유, 권 교수님! 참으로 고맙습니다. 이렇게 좋은 말씀 들으면서 저희들이 많이 배웠습니다. 그러면 우리 전 학장님 간단하게 마무리 말씀해 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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