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알차고 통통튀는 인터뷰] 심채경 한국천문연구원 천문학자

2021/03/31 06:00:00

별 볼 일 많을 줄 알았는데 '별 볼 일 없다'고 말하는 사람. 천문학자 심채경(39) 얘기다. 별, 달, 은하, 밤하늘…. 흔히 '천문학자' 하면 떠오르는 느낌은 '신비롭다' '독특하다' 등이다. 하지만 심채경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천문학자는 전혀 특별하지 않은 직업"이며 "우주는 곧 우리의 일상"이라고 강조한다.

심 연구원은 최근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라는, 일반 사람들의 통념을 깨는 제목의 책을 냈다. 출간된 지 한 달 조금 넘었는데 벌써 4쇄가 나왔고 지금까지 1만4000부가 팔렸다. 지난 26일, 대전 유성구 한국천문연구원에서 그를 만났다.


"1년에 360여 일은 컴퓨터 앞에서 보내요"

심 연구원의 책 제목처럼, 천문학자는 정말 별을 보지 않을까. 그는 "천문대에 가 망원경을 통해 우주를 관측하는 날은 1년에 2~3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나머지 360여 일은 이때 찍어온 자료를 분석하거나, 관측을 준비하는 데 보낸다. 심 연구원은 "컴퓨터로 관측 자료인 그래프를 분석할 때가 천문학자가 별을 보는 순간"이라며 "자료를 분석할 때 잘못된 결론을 내지 않기 위해 수많은 데이터를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천문학자는 능숙한 망원경 조작법보다는 무거운 엉덩이가 필요한 직업인 셈이다. 남다른 집중력과 진득함을 가진 그녀에게 천문학은 천직(天職)일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1000피스짜리 퍼즐을 앉은 자리에서 다 끝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에서 온종일 책만 읽는 날도 많았다.

읽고 쓰는 걸 가장 좋아하던 그가 천문학자가 된 데는 고등학교 선생님들의 몫이 컸다. "지구과학 선생님 두 분이 계셨는데 아주 독특하고 재미있으셨어요. 자연스럽게 천문학에 관심을 갖게 됐지요." 경희대학교 우주과학과에서 학사·석박사과정을 거친 그가 '달 과학자'로 널리 알려진 건 2019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인터뷰 이후다. 달 크레이터(행성 표면에 보이는 움푹 파인 구덩이 모양의 지형) 수천 개를 경도·위도에 따라 특성을 분석한 연구 덕분이었다. 보통 크레이터 1~2개만을 연구하는 기존 연구와 달리, 한 번에 수천 개나 분석한 한국의 젊은 과학자가 있다는 소식에 학계가 들썩였다. 심 연구원은 "저 한 명보다는 한국의 달 탐사 역량에 주목한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똑똑하지 않아도 괜찮아, 마음만 있으면 우주 탐사할 수 있어요"

현재 심 연구원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하 나사)이 주도하는 '상업 달 탑재체 서비스(CLPS)'의 일환인 'CLPS 코리아'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나사는 CLPS를 통해 2024년까지 우주인 2명을 달에 보내는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CLPS 프로젝트로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심 연구원은 "오늘 하루만 해도 달 표면 방사선 측정 장비 제작팀부터 미국의 달 착륙선 제작업체, 우주환경 모니터링팀과 회의를 거쳤다"고 말했다.

행성을 연구하는 천문학자 심채경. 천문학자들의 순수한 열정을 그에게서 읽을 수 있었다. 심 연구원은 어린이들에게 "우주 탐사는 공학자와 화학자, 비행사, 의사, 심리상담사, 기자, 부품에 들어가는 나사를 만드는 여러 회사 직원들까지 수많은 사람이 다 같이 참여하는 일"이라면서 "우주라는 자연을 제대로 이해하는 게 우리의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심채경 연구원은 최근 출간된 책에서 어린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똑똑하지 않아도 되고, 천재가 아니어도 괜찮아. 마음만 있으면 우리는 (우주 탐사를) 같이할 수 있어." 심 연구원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가다 보면 인류에 기여하는 멋진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