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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의 어머니' 박완서 타계 10주기

2021/01/22 06:00:00

고통과 절망 속에서 발견한 출구, 글쓰기

박완서는 숙명여고를 졸업하고 1950년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어요. 하지만 입학식을 치른 지 닷새 만에 6·25전쟁이 터져 대학 생활을 접어야 했죠. 박완서는 전쟁에서 하나뿐인 친오빠를 잃습니다. 아버지나 다름없던 삼촌도 전쟁통에 옥사(감옥에서 죽음)했죠. 그에겐 슬퍼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박완서는 미8군 초상화부에서 일하며 가족 생계를 책임졌어요. 그곳에서 인생의 스승 박수근 화백을 만납니다. 박완서는 훗날 회고록에서 "나만 불행하다고 생각했는데, 박 화백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나 아닌 다른 사람도 보게 됐다"고 고백했어요.

이후 그는 '나목(1970)'과 '엄마의 말뚝(1980)' 등 여러 작품에서 전쟁의 상처를 그려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 그에겐 글쓰기의 원동력이 된 거죠. 그는 작가가 된 이유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온갖 수모를 견뎠다. '언젠가는 이 경험을 글로 쓰겠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40세 늦깎이 작가 되다

1953년 휴전 직후 결혼한 그는 네 딸과 외아들을 키우며 평범한 주부로 살아갑니다. 그의 어머니는 딸이 서울대에 복학하지 않고 결혼한 것을 두고두고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해요. 여자가 결혼하면 자기 꿈은 일단 뒷전이 되는 시대였으니까요. 막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박완서는 자신의 꿈을 위해 펜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흔 살의 나이인 1970년, 박수근 선생의 이야기를 담은 '나목'으로 뒤늦게 등단합니다. 그간 쌓인 글쓰기에 대한 갈증을 풀기라도 하듯, 열정적으로 창작 활동을 벌였죠. 40년 넘는 시간 동안 100편이 넘는 작품을 썼습니다. 그의 작품은 대중적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장편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150만 부 이상 팔리며 오랫동안 '밀리언셀러' 자리를 지켰죠.

마지막까지 펜 놓지 않은 진정한 문인(文人)

전쟁의 기억을 털어낼 즈음, 또 한번 삶의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1988년 5월 남편이 암으로 사망하고, 같은 해 8월 생때같은 외아들도 갑작스레 떠나보내야 했거든요. 그는 아들을 잃은 슬픔을 단편소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1993)’에 담아냈어요. ‘참척(慘慽·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일)’의 고통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진정한 문인이었죠.

한국 문학에 굵직한 업적을 남긴 작가는 2010년 9월 담낭암 진단을 받습니다. 항암치료에도 병세가 급격히 악화했죠.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후배 문인들의 글을 봐주는 등, 펜을 놓지 않았다고 해요. 작가는 ‘가난한 문인들에겐 부의금을 받지 마라’는 유언을 남긴 채, 2011년 1월 22일 80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습니다.

올해 박완서 타계 10주기를 맞아 그를 기억하려는 다양한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고 있어요. 작가의 대표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새 표지를 갈아입은 개정판으로 출간됐어요. 작가의 맏딸 호원숙씨도 최근 ‘엄마 박완서의 부엌-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이라는 에세이를 펴냈어요. 소설가이기 전에 엄마이자 아내였던 박완서의 모습이 담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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