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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문화재 되살리는 한지 우리 일상에서도 더 사랑받길

2021/01/12 06:00:00

“한지(韓紙)를 만든 35년 세월 중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7일 전주시 1호 한지장 최성일(54)씨가 말했다. 그가 만든 한지는 지난해 8월 이탈리아 국립기록유산보존복원중앙연구소(ICRCPAL)에서 공식 인증을 받았다. 이 인증서는 복원계의 ‘국제 통행증’이다. 세계적 권위를 가진 ICRCPAL에서 인정받은 종이는 이탈리아뿐 아니라 전 세계 다양한 국가에서 문화재 복원에 활용한다.

최근 유럽에서 한지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얼마 전 개관 준비를 마친 이탈리아 로마 종이박물관에는 동양의 종이로는 유일하게 전주 한지가 전시될 예정이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이 소장 중인 ‘바이에른 막시밀리안 2세 책상’의 손잡이는 한지 덕분에 이전 모습을 되찾았다.

◇유럽 문화재 보수하는 우리 종이

“각 국가 문화재는 그 나라 자존심이에요. 이탈리아 입장에서 외국 종이인 ‘한지’로 자국 문화재를 보수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제가 만든 종이가 ICRCPAL의 까다로운 절차를 통과했다니 많이 기뻤습니다.” 그의 목소리에서 한지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최 한지장은 그의 아들까지 3대째 전통 한지의 맥을 잇고 있다. 지난해 3월에는 직접 만든 종이를 ICRCPAL에 전달했다. 연구소에서는 5개월 동안 한지를 꼼꼼히 분석했다. 성분을 재차 확인하고, 여러 번의 실험과 전문가 논의를 거쳐 마침내 최종 승인을 결정했다.

지금까지 유럽 문화재 복원에는 자국산 종이 외에 일본의 ‘화지’가 주로 사용됐다. 사실 화지의 뿌리는 한지다. ‘일본 서기’에는 고구려 승려 담징이 610년 종이 만드는 기술을 일본에 전했다는 기록이 있다. “따져보면 우리 종이 기술로 일본이 세계 시장을 점령하고 있던 거예요. 한지의 우수성이 화지에 못지않은데 말이죠.”

최 한지장은 2018년 프랑스와 일본에 제품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의 작업장을 찾았던 일본 바이어는 한지에서 한동안 손을 떼지 못했다. 그 순간 한지가 세계 시장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다고 직감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세계 시장 공략을 위한 노하우 개발에 나섰다. 가령 한지는 제조 공정상 미세한 줄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문화재 복원에 쓰기에는 걸림돌이 될 수 있었다. 전통적 방식에 그만의 몇 가지 새로운 공정을 더했다.

“한지를 널리 알리려면 전통에 대한 고집도 중요하지만, 시대와 용도에 맞게 바꾸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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