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9월 태풍 매미는 한반도를 할퀴고 소멸했다. 사망·실종이 131명, 재산 피해가 4조 원이었다. 당시 거제도의 조선소(큰 배를 만드는 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백씨는 비바람이 잦아들자마자 부산 집을 떠나 회사로 향했다. 도착해보니, 대형 크레인이 넘어가고 건물마다 창문이 깨지는 등 아수라장이었다고 한다. 주말마다 농작물을 가꾸던 자신의 바닷가 밭이 생각났지만, 가볼 틈도 없이 밤낮 회사 복구에 매달렸다. 일주일 후에야 밭에 가본 백씨는 헛웃음을 흘렸다. 1800㎡(약 600평) 논밭에 심어둔 농작물은 파도에 쓸려가고 땅은 경계조차 찾기가 어려웠다. 거제시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시 전체의 피해가 워낙 커서 개인 토지가 유실된 것까지 당장 돕기는 어렵다고 했다. 제방을 쌓으려고 전문가들에게 문의했으나 “트럭이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라서 방법이 없다”고 했다.
-눈앞이 캄캄했겠어요.
“이미 일어난 일 아닙니까. 막막하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나요. 워낙 엉망이 된 땅이라 아마 내놔도 안 팔렸을 겁니다. 다음 태풍이 올 때 똑같이 당할 수는 없잖아요. ‘나이 들어 바닷가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살면 좋겠다’ 하는 꿈을 꾸면서 사둔 곳이었어요. 주변을 둘러보니까 어디선가 떨어져나온 견치석(벽 쌓는 데 쓰는 네모난 돌)이 있어요. 꽤 컸는데 들어 올릴 만은 하더라고요. 이 정도면 혼자 둑을 올릴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처음엔 파도를 막을 용도였군요.
“다음 태풍 피해를 예방하는 제방을 쌓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요. 한두 장 올리다 보니 ‘이왕 하는 거 해변과 잘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보자’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게 지금 같은 모습이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지만요.”
-그 전에 건축 일을 해본 적이 있었나요.
“아무것도 몰랐어요. 시멘트와 물 섞는 비율부터 알아봐야 했으니까요. 그래선지 기껏 만든 돌담이 바람에 무너지기도 했습니다. 그럴 땐 ‘잘못 쌓아서 어차피 한 번은 허물어졌어야 할 것이니 이쯤에서 이렇게 된 게 차라리 잘됐다’ 하면서 다시 올렸지요.”
작업은 이렇게 진행된다. 1년에 한 번 경남 거창에서 대형 트럭으로 견치석을 날라온다. 골목이 좁기 때문에 트럭이 해변 안쪽까지 들어올 수가 없어, 다시 작은 차와 굴착기로 돌을 옮겨서 매미성 한쪽에 모아둔다. 그러면 백씨가 돌을 한 장 한 장 손으로 옮겨 시멘트를 바르고 벽에 올린다. 2003년 10월부터 매 주말 해온 일이다. 휴일, 휴가도 여기서 혼자 보냈다. 2014년 조선소에서 은퇴하고 부산에 사는데, 주중에는 다른 일을 하고 주말엔 매미성으로 온다. 오전 4시에 일어나 부산에서 출발해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돌 작업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빠지지 않는다. 현재 매미성은 벽 높이 12m, 둘레 150m에 망루와 꽃밭도 갖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