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0 09:40:00
▲ 차이코프스키의 '예브게니 오네긴'
'예브게니 오네긴'은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 푸시킨이 1823년부터 1831년까지 9년 동안 쓴 운문 소설입니다. ‘러시아 삶의 백과사전’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유명한 러시아의 고전 작품인데요. 그 일부를 따와 차이코프스키가 오페라로 만들었습니다.
차이코프스키(Pyotr Il’ich Chaikovskii, 1840-1893)는 재론이 필요 없는 위대한 음악가입니다. 오페라 가수인 라바로프스카야는 차이콥스키에게 ‘예브게니 오네긴’의 줄거리를 바탕으로 작곡해줄 것을 부탁합니다. 처음에는 망설였으나 작곡하기 전 하루 밤만에 시나리오를 완성시켰다고 합니다. 푸시킨의 소설의 원문을 사용하되 일부 내용에 무게를 두어 극적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러시아에서는 국민작품이기 때문에 관객들이 공백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오페라라는 형식을 관객들이 수용할 수 있을지 우려했다고 합니다. 많은 고민과 함께 간소하면서도 전달에 초점을 두어 각색을 합니다. 1879년 5월 29일에 음악원의 학생들이 모스크바의 말리이 극장에서 첫공연을 가졌습니다. 이는 1881년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과 1884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으로 옮겨져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이 작품을 감상하면서 자연스럽게 푸시킨을 만나게 되는데요. 러시아 리얼리즘을 구축한 거장의 작품을 오페라로 만나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러시아 국민 문학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그의 작품 세계를 원어로 만나게 되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서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바로 결투 장면인데요. 이유가 참 어이가 없습니다. 렌스키와 오네긴은 친구 사이인데 장난으로 시작하여 장난 아닌 결투로 이어지고 결국 오네긴은 렌스키를 죽이게 됩니다. 이러한 결투는 귀족들 사이에서 자존심 문제로 횡행했던 방법인데요. 앞서 설명한 푸시킨도 결투를 하다 총에 맞아 37세의 젊은 나이로 죽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인 앤드류 잭슨도 결투를 하다 총상을 입어 평생 총알을 몸에 갖고 살았다고 합니다. 지금의 관점으로는 허세로 볼 수밖에 없지만 당시 귀족 사회에서는 명예와 자존심을 위한 중요한 과정이었다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 보편적 감정과 익숙한 이야기
'예브게니 오네긴'에서 오네긴은 작품의 말미에서 절망에 빠집니다. 타티아나를 사랑하고 있었다고 이야기하는데요. 타티아나의 지적처럼 오네긴의 마음은 정복욕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지나간 시간을 추억하며 그때 타티아나를 잡지 못했음에 마음 아파하는데요. 톨스토이의 '부활'에서 오랜 시간 회한의 고뇌를 거치고 평온을 찾는 네흘류도프도 떠오릅니다. 우리가 늘 후회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지나간 것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인 것을 떠올려 보면, 시간과 공간을 넘어 오네긴과 통하는 점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드코'는 러시아의 낯선 작품이지만 내용을 보면서 여러 작품들이 떠올랐을 겁니다. 앞서 설명한 모험의 이야기는 물론, 물속에 제물로 던져진다는 이야기는 우리 고전 심청을 떠오르게 합니다. 이처럼 보편적인 구조 속에서 공감을 가져오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어울리며 깊은 감동을 전합니다.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러시아 오페라 작품이었지만 그 안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은 보편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미를 느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러시아의 위대한 음악가인 차이코프스키와 코르사코프의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나는 것은 큰 행복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서로 다른 시기의 작품이지만 이야기가 이어지는 '세비야의 이발사'와 '피가로의 결혼'을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