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구독: 그건 귀주대첩보다 한 해 앞선 1018년 거란과 벌인 ‘흥화진 전투’에서 일어난 일이에요. 당시 강감찬 장군은 흥화진(지금의 평안북도 의주 일대)에서 삼교천이라는 강을 건너는 거란군을 기다렸다가 소가죽으로 막아둔 둑을 허무는 수공으로 큰 타격을 줬어요.
질문군: 그때 거란족을 모두 강물에 빠트려 죽인 건가요?
나구독: 아녜요. 흥화진 전투는 한겨울이던 12월에 일어났어요. 겨울은 강수량이 적어 강물이 많이 줄어드는 시기죠. 10만 명의 병사를 한데 가둘 만큼 강폭이 넓지도 않았고요. 더구나 빠르게 움직이는 군사들이 강을 건널 타이밍에 맞춰 댐을 터뜨리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에요. 그러니까 강물을 가뒀다 터뜨린다는 작전은 거란족을 혼란에 빠뜨리는 게 주된 목적이었죠.
질문군: 그럼 귀주대첩은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나요?
나구독: 강감찬 장군은 흥화진 전투 이후인 1019년 2월, 후퇴하는 거란군을 추격해 귀주에서 크게 물리쳤어요. 좁은 계곡으로 거란군을 유인하는 작전을 펼쳤죠. 당시 거센 바람이 거란군 쪽을 향해 불기 시작하자 강감찬은 군사들에게 화살을 퍼붓도록 지시했어요. 당시 거란 10만 군사 중 살아남은 사람이 몇 천 명밖에 되지 않았대요. 이 전투를 ‘귀주대첩’이라고 해요. 아, 지금은 일반적으로 흥화진과 귀주에서 벌인 두 전투를 합쳐서 귀주대첩이라고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