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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인터뷰] '한국 국적 사진기자 최초 퓰리처상' 김경훈씨

2019/04/23 16:16:06

로이터통신 사진팀은 지난해 11월 캐러밴(Caravan· 중남미 이민자 행렬)과 동행하며 이들의 여정을 기록했다. 김 기자는 15일 동안 멕시코 서부의 쿨리아칸부터 티후아나까지 3000㎞를 이동했다. 지난 15일 퓰리처상 이사회는 로이터통신 사진팀을 '2019 퓰리처상 브레이킹 뉴스' 부문 수상자로 선정했다. 김 기자는 한국 국적 사진기자 최초로 퓰리처상 수상자가 됐다. 지난 20일 일본 도쿄에서 근무 중인 김 기자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퓰리처상 수상 축하합니다. 사진을 찍을 당시 이렇게 큰 반향을 일으킬 거라고 예상했나요?

"그날 전달해야 하는 뉴스를 잘 담은 사진이라는 생각은 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캐러밴을 범죄자 집단으로 묘사했지만, 제가 본 이들은 단지 중남미의 폭력과 범죄에서 벗어나 자녀들에게 나은 미래를 주려는 사람들이었어요. 충분한 식량도, 옷도 없는 상황에서 '미국에 가면 나은 삶이 펼쳐지지 않을까'하는 희망 하나로 미국으로 향하고 있었죠. 그렇게 수천 킬로미터(㎞)를 걸어 도착한 국경은 철제 빔으로 막혀 있었고, 미국 국경 수비대는 최루탄을 쐈죠. 이를 피해 달아나는 모습이 중남미 이민자의 현실을 압축해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엄마는 몸에 꽉 끼는 '겨울 왕국'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겨울 왕국 캐릭터가 이들이 꿈꾸는 '아메리칸 드림'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했고요. 최루탄 공격이 뜸해진 틈에 노트북을 켜서 로이터통신 본사로 사진을 전송했죠."

당시 상황이 위험하지는 않았나요?

"미국 국경 수비대의 최루탄 발사는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어요. 만일을 대비해 가지고 있던 마스크와 헬멧을 쓸 겨를도 없었죠. 제가 대학에 입학했던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우리나라에 시위가 자주 벌어졌습니다. 최루탄도 많이 발사됐어요. 그때부터 시위 현장에 사진을 찍으러 많이 다녔어요. 로이터통신에서도 전쟁이나 자연재해 같은 위험 지역에서 대처하는 교육을 정기적으로 하기 때문에 그 상황이 낯설지만은 않았습니다."

이 사진이 미국 여론을 바꿨다면서요.

"사진이 나간 다음 날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등 다양한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TV에서는 제가 찍은 사진이 계속 나왔죠. 전 세계 로이터지국의 친구에게서 '네 사진이 신문 1면마다 실렸다'는 연락이 왔어요. 미국의 보수적인 사람들은 '중남미 이민자들이 미국에 와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이후 '인도적인 차원에서 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습니다. 기자로서 제가 어느 의견이 맞다, 틀리다 이야기를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제 사진을 통해 미국인들이 중남미 이민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점이 기분이 좋았습니다. 사람들이 올바른 판단을 하게 하는 재료를 제공하는 것, 이것이 '포토 저널리즘'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봅니다."

김 기자는 고등학생 때부터 사진기자를 꿈꿨다. 전쟁 보도 사진기자인 로버트 카파 전시 포스터를 본 뒤였다. 1993년 중앙대학교 사진학과에 진학해 보도사진을 전공하고, 1999년 일간스포츠에서 처음 기자로서 카메라를 잡았다. 2002년 로이터통신으로 옮겨 동남아시아 쓰나미(2004), 동일본 대지진(2011), 세월호 참사(2014), 중국 양쯔강 유람선 침몰(2015), 평창올림픽(2018) 등역사적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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