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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인터뷰] 김정훈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

2019/04/09 15:13:08

"어, 작년 그 길이 아니네?"

"남극 갈 때마다 지형과 생태계 변화를 느낍니다. 10년, 20년 뒤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습니다."

지난달 28일 극지연구소(인천)에서 만난 극지연구소 소속 책임연구원 김정훈(44) 박사는 2004년부터 15년간 매년 11~2월 남극에 머물며 동물 생장을 조사한 '극지 베테랑'이다. 펭귄·갈매기·제비 같은 조류부터 물개·물범 등 포유류까지 성장과 움직임을 장기간 기록한다. 이를테면 남극도둑갈매기를 잡아다 추적기를 채워 날려 보낸 뒤 어디로 이동했고, 누구와 짝짓기를 했는지, 언제 죽었는지 확인해 극지 생태계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다. 그처럼 남극으로 가 연구하거나 연구자를 돕는 일을 하는 한국인은 한 해 80명쯤 된다.

김 박사에 따르면 남극에 머무는 이들이 요즘 가장 두려워하는 건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는 얼음이다. "매번 비슷한 시기에 가는데 동물 서식지까지 이동하는 길이 계속 달라져요. 예전엔 꽁꽁 언 길을 밟고 목적지까지 직선으로 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얼음이 녹아 길이 끊어지는 바람에 빙 둘러 가야 하는 곳도 있고요. 외국 대원 중에는 크레바스(빙하가 깊이 갈라진 곳) 아래로 떨어져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지요."

남극은 대륙 위에 눈이 쌓여서 거대한 얼음덩이를 이룬 곳이다. 바닷물이 얼어 대륙처럼 보이는 북극과 다르다. 남극은 한겨울 기온이 영하 30도 아래로 내려갈 만큼 춥지만, 지구 온난화가 심해지면서 이곳도 빙하가 빠르게 녹고 있다.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학교 등으로 구성된 연구팀에 따르면 남극 얼음이 녹는 속도는 40년 전보다 6배 이상 빠르다. 김 박사가 찾아가는 길이 자꾸 달라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남극 빙하가 녹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세계 도시의 4분의 3은 해안가에 있는데, 해수면이 높아지면 해안 도시들이 물에 잠겨 사라질 수 있다. 이는 인류가 지금껏 경험해 본 적 없고 돌이킬 수도 없는 파멸적 환경 재앙이 될 수 있다. 김 박사의 공포는 바로 이 점에서 나왔다.

"이제 남극에선 변화가 매일 일어납니다. 길 하나 제대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지요. 우리 경험이 쌓이는 속도보다 환경이 변하는 속도가 더 빠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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