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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기획 <上> 아이부터 소년·소녀까지 독립운동의 횃불 들다

2019/02/27 15:34:03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 파고다공원에서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창영공립보통학교(지금의 창영초) 학생 수십 명은 3월 6일 거리로 나가 만세를 불렀다. 8일엔 시민에게 독립선언서를 나눠줬다. 일제 경찰은 학교로 전화해 "학생들을 감시하라"고 요구했고, 이를 알아챈 학생들은 "경찰과 학교가 연락하지 못하게 하라"며 전화기를 부수고 전선을 잘라 버렸다. 이 학생들은 옥에 갇혀 고초를 치렀다. 강옥엽 인천시사편찬위원회 전문위원은 "근대적 의미의 학교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당시 초등학교에는 어린이뿐 아니라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어른도 많이 다녔다. 하지만 만세를 불러 인천 지역 어른들에게 전파한 이들은 비교적 어린 학생이 맞는다"고 설명했다.

바다 건너 강화도의 강화공립보통학교(지금의 강화초)에서는 3~4학년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고 교실 칠판에 태극기를 그리는 등 다양한 방식의 만세 운동이 벌어졌다. 어른들과 함께 횃불을 들고 나서기도 했다. 섬이 많은 이 지역에선 만세 운동을 한다는 사실을 육지에 전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 때문에 학생들이 활활 타오르는 횃불을 들고 한밤 바닷가로 달려간 것이다. 강 전문위원은 "섬에서 태워 올린 '독립 불꽃'의 의지는 육지에도 그대로 전달됐을 것"이라고 했다.

충남 독립운동도 초등생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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