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마지막 숨결이 남아있는 '부여'
첫 번째 탐방 장소는 부여 관북리 유적지. 백제 사비시대 궁궐이 있던 자리다. 건물 기둥이 있던 흔적과 네모난 연못 터가 남았다. 권혜운 해설사는 "백제는 생활하수를 처리하기 위한 수도 시설을 갖추고 바둑판식으로 도시를 정비할 정도로 도시 건축 기술이 매우 발달했다"고 설명했다. 3D 기술을 활용하면 기둥 자국에서 당시 건물 모습까지 추측할 수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김은정(5학년) 양은 "시간이 이렇게 많이 흘렀는데도 기둥 모양이 남아있는 게 신기하다. 아무것도 없는 땅처럼 보였는데, 설명을 듣고 나니 왕궁이 있던 이곳이 위대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다음 장소로 가는 유람선에 올랐다. 흐르는 백마강을 따라 도착한 곳은 부소산성. 수도 사비를 보호하기 위해 쌓아올린 성이다. 백제 멸망 직전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쫓기던 삼천궁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슬픈 역사가 전해지는 곳이다. 산 중턱에는 이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고려 현종이 1028년에 지은 고란사가 있었다. 고란사 약수로 목을 축인 학생들은 낙화암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낙화암은 삼천궁녀가 백마강으로 몸을 던졌다고 알려진 바위다. 힘겹게 산을 오르던 윤찬(5학년) 군은 "옛날에는 지금처럼 산에 길도 제대로 나 있지 않고 손잡이도 없었을 텐데 궁녀들이 이 길로 도망치면서 너무 힘들고 무서웠을 것 같다"고 말했다. 권 해설사는 "흔히 '삼천궁녀'가 뛰어내렸다고 하지만, 당시 백제의 인구밀도 등을 따졌을 때 과장된 숫자라는 이야기도 있다.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을 방탕한 왕으로 기록하기 위해 궁녀 수를 조작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