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러한 학습 위기 속, 보고서는 한국 교육이 개발도상국에 본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필머 연구원은 “한국 교육을 보며 ‘할 수 있어’라는 희망을 봤다”며 “국가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놓였더라도 교육을 통해 성장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과거 한국전쟁 이후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도 교육으로 발전을 이룬 한국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지금 학습 위기를 겪는 개발도상국이 한국의 사례를 참고하는 것이 좋겠다고 덧붙였다.
특히 세계개발보고서는 한국이 ‘모두를 위한 학습’을 잘 구현한 국가라고 소개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근무했던 로저스 연구원은 “많은 개발도상국이 엘리트 양성에 급급해 대학 교육부터 투자했던 것과 달리, 한국은 이러한 실수를 하지 않았다”며 “한국은 양질의 초등교육을 모든 학생에게 우선 제공하고, 그 위에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을 쌓아 올렸다. 점진적으로 보편 교육을 확산한 건 매우 적절한 전략”이라고 호평했다.
로저스 연구원은 “현재도 한국은 성취가 높을 뿐만 아니라, 형평성도 상당한 편”이라며 “이는 OECD 국가와 비교해도 양호하다”고 말했다. 2015년도 국제학업성취평가(PISA) 보고서에 따르면, 어려운 환경에도 좋은 성적을 받는 학생(회복력 있는 학생)의 비율이 우리나라는 40.3%로 OECD 국가 평균은 29.2%다. 그는 “교육 형평성이 한국이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루는 데 아주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보고서는 교육이 학습 성과로 이어지려면 모든 이해관계자가 ‘일관된 방향으로 지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을 건넨다. 예컨대, 한때 핀란드 교육 열풍이 불었을 때, 수많은 나라가 핀란드의 우수한 교육프로그램을 우후죽순 따라 했지만 그로 인해 성공을 경험한 나라는 거의 없었다. 자국의 상황을 생각지 않고 무작정 도입해 오히려 상황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해당 보고서는 최근의 한국 교육에 대해 ‘일관된 방향의 지지’가 부족한 사례로 그린다. 교사가 학생 중심의 새로운 교육과정을 시도하려다가도, 학생이나 부모가 여전히 시험 중심의 교육을 지지해 교육과정의 효과를 약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교육과정은 지식 외에 창의성ㆍ문제해결력 등을 증진하도록 변화했지만, 입시 제도는 달라지지 않아 시험 중심 교육이 되풀이된다는 얘기다. 이에 이들은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대입제도 개편은 학교 현장과 교육과정 등을 유기적으로 연계해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필머 연구원은 “학교 교육과 대입제도가 각기 지향점이 다르면 교육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