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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사랑한 이방인] 우리 고전문학 전도사 케빈 오록

2018/05/24 16:14:14

◇우리말 공부하려 시작한 국문학이 번역가의 길로

"우리 독자들은 섭섭하겠어요. 한강의 두 번째 맨부커상을 기대했을 텐데요."

지난 23일 서울 동대문구 자택에서 만난 오록 신부는 한강 작가의 이야기부터 꺼냈다. 노벨 문학상과 더불어 최고의 문학상으로 꼽히는 맨부커상 수상작이 발표된 날이었다. 2016년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은 올해 '흰'으로 최종 후보에 올랐지만 아쉽게 수상이 불발됐다. 신부의 탁자에는 '흰'의 국문판과 영문판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지난 1964년 선교를 위해 아일랜드에서 건너온 오록 신부는 서른이 된 1970년에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문과에 입학했다. 그저 '한국의 말과 글을 더 잘 구사하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그러다 박두진, 박목월, 박영준 등 한국 문학계의 거장들과 사제(師弟)로 인연 맺으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이들은 국문학을 공부하겠다는 덩치 큰 외국인 신부를 기특하게 여겼다.

"눈과 입이 트일 무렵, 교수님들께서 말씀하시더군요. 우리 문학을 번역해보면 어떻겠냐고요. '까짓 거 한번 해보지 뭐' 하고 무턱대고 덤벼들었어요. 그런데 웬걸요. 번역은 단순히 글을 옮겨 쓰는 작업이 아니었어요. 새로운 문학작품을 만들어 내는 일이었죠. 고생길이 열렸다 싶었죠(웃음)."

오록 신부는 1974년 '한국단편소설집(Ten Korean Short Stories)'을 펴낸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번역가의 길을 걸었다. 1980년에는 '한국시 모음집(The Book of Korean Poetry: Choson Dynasty)'으로 영국 런던 시회가 주는 최우수 번역 작품상을 받았다. 최인훈의 '광장'이나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서정주의 시집 등도 그의 노력 덕분에 해외에 소개됐다.

"아름다운 문학작품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다는 게 번역의 즐거움입니다. '한국 문학의 우수성을 알리겠다'는 대단한 사명감보다는 '좋은 글을 다 같이 즐겨보자'는 마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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