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널문리'로 불렸던 이곳은 얼떨결에 판문점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만 해도 판문점이 있던 땅은 벌판에 초가집만 드물게 있던 작은 마을이었다. 1951년 10월 25일, 널문리주막에서 정전회담이 열리면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영어·한국어·중국어를 공용어로 사용한 이 회담에서 널문리주막을 板門店(판문점)으로 표기하면서 훗날 지명으로 굳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널문리라는 이름도 전쟁으로 생겨났다는 사실이다. 임진왜란 당시 평양으로 피신하던 선조가 이곳에서 강을 만났는데 다리가 없어 건너지 못한 일이 있었다. 그때 백성들이 자기 집 '대문'을 뜯어 '널빤지' 다리를 만든 뒤 선조를 건너게 했다고 해서 널문리라 부르게 됐다.
판문점, 평화와 긴장 공존한 65년
판문점은 남북이 유일하게 철책 없이 서로 마주 볼 수 있는 곳이지만, 동시에 어깨를 맞댄 휴전국이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는 장소이기도 하다. 평화와 긴장이 늘 공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