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제주도 각지의 오름마다 봉화가 솟아올랐다. 이 신호를 기점으로 350여 명의 남조선노동당 무장대가 봉기를 일으켰다. 이들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5·10 총선거'를 막기 위해 선거 준비가 한창이던 제주도 경찰지서 12곳을 습격했다. 이 선거로 남한 단독정부가 세워지면 한반도는 영원히 남과 북으로 갈라진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무장대의 활동으로 제주도의 최종 선거인 등록률은 64.9%에 불과했다. 당시 전국 평균 등록률 91.7%에 비하면 굉장히 낮은 수준이었다. 결국 제주의 3개 투표구 중 2곳의 선거가 무효가 됐다.
이에 군과 경찰은 4월 3일의 무장봉기를 '폭동'으로 규정하고 토벌에 들어갔다. 이를 두고 미국 뉴욕타임스는 "1948년 5월 10일 남한에서 실시한 선거에서 제주도에서만 유일하게 보이콧되자 남한에 있던 미국 사령관들이 분개해 했고, 그 이후 섬 주민들을 '청소하는 작전'을 진행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노랑개 왐수다, 검은개 왐수다"선거 이후 경찰·국방경비대는 토벌대를 꾸려 주민들을 강경 진압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마을에는 토벌대의 상황을 감시하는 보초병이 생겨났다. 10대 소년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보초병을 마을 주민들은 '빗개'라고 불렀다. 군에서 보초나 감시병을 뜻하는 영어 표현인 '피켓(picket)'에서 유래한 말이다.
빗개들은 마을 어귀나 오름에 올랐다가 토벌대가 나타나면 재빨리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 피하도록 했다. 노란 군복을 입은 군인을 보면 '노랑개 온다', 검은 제복을 입은 경찰을 보면 '검은개 온다'고 외치며 나팔을 불거나 깃발을 흔들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은신처로 마련해둔 '눌'(곡식이나 장작을 쌓은 더미) 속이나 가까운 '궤'(동굴을 뜻하는 제주 방언)에 숨었다.
그해 10월 17일 제주 전역에 소개령이 내려졌다. 당시 제주에 내려진 소개령에는 '해안선에서 5㎞ 이상 들어간 중산간 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폭도로 간주해 총살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른바 '초토화 작전'. 군인들은 중산간 지대에 사는 주민들이 무장대에 피난처를 제공하고 있다고 결론 내리고 마을 전체를 불태워버렸다. 초토화 작전은 이전에 젊은 남자로 한정됐던 검거 대상을 3~4살 어린이부터 80대 노인으로 넓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붙잡았다. 재판 절차는 없었다. 잡히면 즉시 처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