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색이 섞이고 겹쳐지며 독특한 작품 탄생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수많은 '얼굴'들이 기자를 반겼다.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 할리우드를 사로잡은 영화배우, 혁신의 상징이 된 IT 사업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등 유명인들의 초상화가 작업실 곳곳에 걸려 있었다. 테이프를 덧붙여 만든 작품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고 강렬했다.
"호기심에서 출발한 작업이었어요. 도무지 예술과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낯선 재료로 초상화를 그린다면 어떤 분위기를 풍길까 궁금했거든요. 그런데 유화로는 담아내지 못했던 특별한 생동감이 나타나더라고요. 제게 있어 테이프는 물감이고, 커터 칼은 붓이에요. 이 둘만 있으면 뭐든 표현할 수 있어요."
조윤진 작가는 2013년부터 테이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작가'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았던 그는 어느 날 화실에 굴러다니던 노란 박스테이프를 보고 '유레카'를 외쳤다. 테이프가 물감처럼 보였다.
"사실 테이프는 인물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재료는 아니에요. 색도 한정돼 있고, 곡선을 표현하기도 어렵거든요. 재료의 특성을 파악하기도 쉽지 않았어요. 물감은 빨강에 파랑을 섞든, 파랑에 빨강을 섞든 똑같이 보라색이 되지만 테이프는 붙이는 순서에 따라 완전히 다른 색이 되거든요. 그런데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면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작품이 완성돼요. 소름이 돋을 만큼 짜릿한 순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