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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인터뷰] "여행은 가장 좋은 세상 공부… 교훈 없는 땅은 없어요"

2018/02/22 16:18:19

◇일본부터 아프리카 대륙까지… 47년간 지구 한 바퀴 돌아

"한국기록원 측에 제가 그동안 다녀온 여행지 사진과 출입국 도장이 찍힌 여권 등을 보여주니 깜짝 놀라더군요. '정말 이 많은 나라를 다 다녀온 것이 맞느냐'면서요(웃음). 인증서를 받자마자 어머니 산소를 가장 먼저 찾았습니다. 어머니 꿈이 세계 일주였는데 비행기 한번 타보지 못하고 돌아가셨거든요. 대신 꿈을 이뤄 드린 기분이었죠."

이 전 차관이 인증서를 보여주며 말했다. 여행 관련 서적들이 빼곡히 꽂힌 책장이 사무실 한쪽 벽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다. '중앙아시아의 역사' '아프리카 대륙의 역사와 문화' 등 각 나라의 역사와 문화적 특성을 이해할 수 있는 책들이었다.

"외국에 나가서 건축물 하나를 봐도 그 나라의 역사·문화적 배경을 알고 보는 것과 그러지 않은 것은 천지차이죠. 그래서 저는 여행 가기 전에 방문할 나라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고 갑니다. 여행지에서도 틈날 때마다 책을 꺼내놓고 공부했죠."

스스로 '여행 DNA'를 타고났다고 말하는 이 전 차관은 1971년부터 세계를 돌아다녔다. 처음 방문한 나라는 출장차 들른 일본이었다.

"당시만 해도 일반인이 마음대로 해외여행을 떠날 수 없었던 시절이었어요. 처음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 도착했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건물이며 넓은 도로, 깨끗한 골목골목까지…. 발전한 일본의 모습을 보고 일종의 문화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밖을 뛰쳐나왔을 때 그런 기분이었을까요?"

일본을 시작으로 공직에 있던 30여 년간 미국, 브라질, 케냐 등 40여 개국을 다녀왔다. 1993년 은퇴 후에는 아내와 함께 본격적으로 여행에 나섰다. 첫 여행지인 유럽부터 중남미, 태평양 섬나라, 아프리카 대륙에 이르기까지 지구 한 바퀴를 도는 데 꼬박 47년이 걸렸다.

◇"여행보다 더 좋은 세상 경험은 없어요"

수많은 여행을 하면서 잊지 못할 경험도 많이 했다. 아프리카에서는 지나가는 괴한에게 총을 맞을 뻔한 적도 있었고, 어렵게 찾은 대서양의 한 섬나라에서는 비자 문제가 생겨 억울하게 추방당한 적도 있다.

"제가 전 세계 모든 국가를 다녀왔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묻는 말이 있습니다. '어디가 가장 좋았냐'는 질문이죠. 가장 난감한 질문이기도 해요. 같은 대륙 안에서도 국경만 살짝 넘으면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지거든요. 아프리카에 있는 지부티라는 나라는 미국의 그랜드캐니언과 같은 거대한 협곡이 있어 풍경이 기가 막힙니다. 반면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높은 빌딩과 화려한 네온사인이 빛나는 나라로 지부티와는 전혀 다른 매력을 뽐내지요. 모든 나라가 특색이 있고 매력이 있으니 도저히 하나만 선택할 수가 없어요."

47년 대장정의 마침표가 된 마지막 여행지는 2016년 10월 방문한 영국령 세인트헬레나다. 나폴레옹이 유배돼 최후를 맞은 장소로 유명한 세인트헬레나는 아프리카 대륙 서쪽 기슭에서 약 1900㎞ 떨어진 곳에 있는 외딴섬이다.

"세인트헬레나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훨씬 힘든 여정이었어요. 한국에서 두바이를 거쳐 두바이에서 다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으로 가야 하죠. 그곳에서 배를 타고 5박 6일간 항해한 끝에 도착했어요. 배도 워낙 작아서 파도가 일렁일 때마다 멀미하느라 혼났습니다." 고된 여정 끝에 처음 세인트헬레나에 발을 디뎠을 때는 아내와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저는 여행지에서 매일 밤 일기를 썼습니다. 그날그날 여행하면서 느낀 감정과 배운 점 등을 써 내려갔죠. 여행 중 겪었던 힘든 일도 나중에 돌아보니 모두 인생의 교훈이 됐습니다. 여러분도 저처럼 여행을 떠나게 된다면 '여행 일기'를 써보세요. 아마 평생 간직할 보물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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