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15 16:01:30
◇소리를 새기다
"LP는 음악을 접하는 방식 중에 가장 아날로그예요. 플라스틱 판에 새겨진 홈을 바늘로 긁어서 듣는 거니까요. 눈으로도 볼 수 있어요. 빙글빙글 돌아가는 레코드판을 보고 있으면 마치 최면에 걸릴 것만 같아요(웃음)."
지난 12일 서울 마장동의 스튜디오에서 만난 백희성씨가 LP의 매력을 조근조근 설명했다. '따뜻한 소리' '아날로그 감성' 등 다양한 매력을 뽐내는 LP지만 편리함과는 거리가 멀다. 우선 음악 하나를 듣는 과정이 무척 번거롭다. 판에 묻은 먼지를 한 번 닦아내고, 턴테이블 위에 정확히 놓아야 한다. 또 LP를 긁는 바늘의 무게가 적당한지 확인하고 돌아가는 판 위에 조심스럽게 놓아야 재생이 된다. 속도도 중요하다. 정속도로 돌면 1분당 33과 3분의 1회전 한다.
제작 방식은 재생과 반대다. 그는 "소리 자체를 매끈한 PVC(플라스틱의 일종) 판에 물리적으로 홈을 파서 새기는 것"이라며 "그 자국을 소리골이라고 하는데, 작업하는 내내 현미경으로 소리가 잘 깎였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소리가 새겨지는 걸 보면서 곡 간격도 나누고, 소리 크기 등을 일일이 손으로 맞춘다.
이렇게 원판(래커마스터)이 완성되면, 공장으로 옮겨 니켈 소재의 금속판(LP마스터)에 본을 뜬다. 공장에서는 이 금속판을 프레스 기계에 넣어 지름 30㎝의 LP판을 찍어낸다.
◇언젠가 소멸하기에 더 소중한 LP
LP는 수명이 있다. 시간이 흘러도 손상되지 않는 디지털 음원과 가장 큰 차이다. 재생을 하기 위해 바늘이 판에 닿는 순간부터 소리골이 상하기 시작한다. 그는 "보통 판 하나를 500회 정도 플레이하면 음질이 떨어진다"면서 "정확하게는 소리 크기인 '음압' 자체가 낮아진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조화보다 생화에 더 끌리는 이유도 언젠가는 소멸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LP가 그래요. 500회라고 하면 많은 것 같지만, 정말 좋아하는 곡이라면 플레이되는 매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겠어요."
판 하나에 담기는 음악의 길이는 장르마다 다르다. 가요나 팝은 20~22분, 클래식의 경우 악기 수가 적다면 30분까지도 가능하다. 그는 "소리골은 소리의 크기와 음정에 따라 깊이와 폭이 달라지는데, 저음이면 소리골의 폭이 넓어지고 고음이면 좁아지는 식"이라며 "대중가요처럼 소리가 크고 풍성하면 골이 차지하는 면적이 커지니까 판에 담을 수 있는 분(分) 수가 줄어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까다로운 작업은 클래식 음악이다. 특히 솔로 연주의 경우 작은 먼지 하나만 들어가도 불량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요한나 마르치가 연주한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를 제작한 적이 있습니다. 연주인들조차도 무척 어렵게 생각하는 곡인데, LP로 새기기도 쉽지 않더라고요.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사랑받은 이유를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르치의 초판 LP는 지난 2015년 경매 사이트 이베이에서 1200만 원에 낙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