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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시인 윤동주 탄생 100주년

2017/12/27 16:09:21

◇책을 좋아하던 문학 소년, 시인을 꿈꾸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중략)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후략)"

나야 나. 윤동주가 사랑한 별. 좀 전에 소개한 시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별 헤는 밤'인데, 여기에서도 내가 주인공이지? 평소에 나를 어찌나 쳐다보던지 민망할 정도였다니까. 어느 순간 나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더라고. 언니 별들한테 물어 정보를 좀 수집했지.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중국 지린성 옌볜 지역인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어. 당시 이곳에는 경제적 어려움이나 일제의 탄압 때문에 나라를 떠나온 한국인이 많이 살고 있었대. 항일독립운동의 근거지이기도 했어.

그는 윤영석·김용 부부가 결혼 8년 만에 얻은 귀한 아들이었어. 그전에 딸을 하나 낳았는데 금방 죽고 말았거든. 그 뒤로 여동생(혜원)과 남동생 둘(일주·광주)이 태어나 4남매를 이뤘어. 그러니까 동주에게는 형이나 누나가 없었던 건데, 이상하게 훗날 시에서 누나에 대한 그리움을 자주 노래하더라고. '편지'라는 동시도 그중 하나야.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하늘나라에 가 있는 누나가 문득문득 보고팠나 봐.

순하고 어질었던 동주는 어린 시절 외삼촌이 세운 명동소학교를 다니면서 민족의식을 키워나갔어. 책을 무척 좋아하는 '문학 소년'이기도 했는데, 친하게 지내던 동갑내기 고종사촌형 송몽규 등 친구들과 글을 모아 '새 명동'이라는 어린이 잡지를 펴내기도 했대.

이후 용정 은진중학교를 거쳐 평양 숭실중학교에 편입하면서 '시인'이란 꿈을 키워나갔어. 그의 책장에는 정지용과 백석 등의 시집이 빼곡히 꽂혀 있었지. 부모님이 추운 겨울 교복에 안감을 대라고 준 돈으로 책을 사서 크게 혼났다는 일화도 전해져.

동주는 1934년 12월 24일부터 시를 완성한 날짜를 적어 습작품을 보관하기 시작했어. 이듬해 '조개껍질'을 시작으로 다양한 동시도 지었지. '호주머니'라는 동시를 보면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따스한 마음과 생각을 지닌 그의 마음이 느껴질 거야. 누나와 놀다가 어머니한테 혼나고 빗자루를 숨기는 장면을 그린 '빗자루'와 같은 동시도 재밌어.

그 시절 동주의 원고 노트를 살펴봤더니 표지에 비너스상이 그려져 있더라고. 남다른 예술 감각이 엿보이지?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재봉틀과 축구, 수학에도 재능을 보였다는 거야. 축구부원들 유니폼 등번호를 직접 재봉틀질로 달아주기도 했대.

◇감각적인 언어로 시에 성찰과 번뇌를 담아내다

1938년 그는 아버지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연희전문학교(현재 연세대) 문과에 진학했어. 아버지는 "문학을 해서 뭘 해 먹고살겠느냐"며 "먹고사는 게 걱정 없으려면 의사를 해야 한다"고 화를 냈지만, 며칠씩 밥을 굶어가며 문과를 고집하는 아들을 끝내 이기지 못했어.

서울로 온 동주는 수업을 들으며 자신의 문학관과 민족관을 정립해 나갔어. 유카타를 입은 조선 사람을 보면 메스껍다고 외면하고, 친구들이 일본말로 이야기해도 애써 우리말로 대꾸했지.

2학년이던 1939년부터는 조선일보 학생란을 통해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어. 용정에 있는 동생들에게 매달 조선일보가 발행하는 '소년'이라는 어린이 잡지를 사서 보내기도 했대.

1941년 일본의 우리 민족 말살 정책이 심해지자 그의 고뇌도 깊어갔어. 이 시기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서시' 등 주옥같은 명작이 탄생했지. 동주는 시를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인간과 우주를 살피며,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의 우울함과 번뇌를 쏟아냈던 거야. 나아가 독립의 실천을 꿈꿨어.

그해 말 동주는 지금까지 썼던 시 중 19편을 뽑아 짤막한 시집을 꾸렸어. 제목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고 지었지. 총 세 부를 필사해 한 부는 자신이 갖고, 나머지 두 부는 연희전문학교 스승인 이양하 교수와 함께 하숙하던 후배 정병욱에게 줬어. "일제의 검열을 통과하지 못할 뿐 아니라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이 교수의 만류로 아쉽게 출판은 좌절됐지.

연희전문학교 졸업 후인 1942년에는 아버지의 권유로 일본 유학길에 올랐어. 릿쿄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들어갔는데, 이듬해 송몽규와 독립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돼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히고 말아. 그리고 광복을 불과 6개월 앞둔 1945년 2월 16일, 28세의 꽃다운 나이에 감옥에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어.

동주의 시는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날에도 큰 사랑을 받고 있어. 일본에 '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도 있다던데? 참, 그의 동생 일주도 건축공학과 교수로 강단에 서는 가운데 동시를 즐겨 썼대. 일주가 형을 그리워하며 쓴 동시 '민들레 피리'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할까 해. 반짝거리는 눈으로 날 빤히 보던 동주가 왠지 그리운 날이니까.

"(전략) 꽃은 따 가슴에 꽂고/ 꽃씨는 입김으로 불어 봅니다/ 가벼이 가벼이/ 하늘로 사라지는 꽃씨// -언니도 말없이 갔었지요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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