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율은 하나의 예술"… 다양한 주문 소화해야
지난 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의 피아노 보관실. 이종열 조율사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이날은 피아니스트 백건우(71)가 8일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32곡)을 연주하는 긴 여정의 첫날이었다. 이 조율사는 왼손으로 건반을 하나씩 누르면서 동시에 오른손으로는 튜닝해머를 들고 조율 핀을 미세하게 조였다. 소리가 조금씩 비틀어지면서 제자리를 찾았다.
피아노에는 건반 88개가 있다. 흰건반 52개, 흰 건반보다 반음 높은 검은건반 36개로 구성된다. 건반마다 강철로 만든 줄이 3개씩 매여 있다. 건반을 두드리면 양털을 압축해서 만든 해머가 줄을 때리면서 소리를 낸다. 조율은 이 강철 줄을 조이고 풀면서 공연에 알맞은 소리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피아노 한 대를 조율하는 데는 보통 2시간 정도 걸린다.
"백건우씨는 까다로운 연주자에 속해요. 인연도 오래되고 호흡도 많이 맞췄지만, 여전히 대하기 어려워요. 이번 공연을 앞두고는 저음부 건반이 좀 더 빨리 올라오게 해 달라고 주문하더군요. 저음부 건반을 연타할 때 음색이 마음에 안 드는 거죠."
조율사는 연주자들의 다양한 주문을 소화해야 한다. 연주자의 기법, 곡의 종류, 독주인지 협연인지 등에 따라 조율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같은 곡이라도 '브라이트하게(밝게)' '약간 벙벙하게' 식으로 요구가 제각각이다. 그는 "단 한 번도 같은 조율은 없다"면서 "조율도 하나의 예술"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