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28 03:04:18
전문가들은 "주로 부모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에게서 발견된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번아웃 증후군은 소아 우울증의 하나다. 일반 우울증과 구분해 '탈진 우울증'이라고 한다. 일반 소아 우울증은 온종일 우울한 것이 특징이다. 번아웃 증후군은 아침엔 '열심히 해야지' 마음먹다가도, 점차 무기력·우울해진다. 하지현 건국대 신경정신과 교수는 "부모와 충돌하는 아이들과 달리, 번아웃 키즈는 자신의 상태를 잘 표현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최근 번아웃 증후군 진단을 받은 한 여중생은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던 모범생이었다. 간혹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지만, 부모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라고 여겼다고 한다. 딸이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혼자 온종일 웅크리고 앉아 있는 걸 보고서야 심각성을 느껴 병원에 데려갔다.
고등학교 1학년 김모(16)양은 수개월째 무기력증을 겪고 있다. 김양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하루를 어떻게 채워나가야 할지 막막하다"며 "원래 잘 웃고 말도 많고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도 좋아하는 성격이었는데, 왜 이렇게 변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신의진 연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부모가 꾀병으로 치부해 치료 시기를 놓치면 만성 우울장애가 된다"며 "특별한 이유가 없이 아이가 몸이 아프다고 하면,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증상이 심해지면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거나 게임 중독에 빠진다. 신 교수는 "스마트폰 때문에 부모와 친밀한 관계 형성이 안 돼 아이들이 심약해진 것도 큰 요인"이라고 했다.
한국에선 소아 우울증이 높은 비율로 나타난다. 지난해 교육부와 질병관리본부에서 발표한 청소년건강행태온라인조사에 따르면 청소년(13~18세)의 스트레스 인지율(평상시 스트레스를 '대단히 많이' 또는 '많이' 느낀다는 응답)은 37.4%, 우울감 경험률(최근 12개월 동안 2주 내내 일상생활을 중단할 정도로 슬프거나 절망감을 느낀 적이 있다는 응답)은 25.5%로 나타났다.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은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이런 증상을 겪다가 중학생 때 최고조에 이른다"며 "병원을 찾는 청소년 중 20%는 번아웃 증후군 증세를 보인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자녀에게 번아웃 증상이 나타나면 약 2주간 학원·숙제 등에서 아이를 해방시키고, 만화책 읽기·음악 감상 등 아이가 원하는 걸 하면서 충분히 쉴 수 있도록 도와주라고 조언한다.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 주로 직장인 등 성인에게 나타나지만, 최근 이 증상을 호소하는 아동·청소년이 늘고 있다. 의학적으로 '소아 우울증'으로 분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