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키바는 무척 슬펐습니다. 일정은 바빴지만, 당나귀와 개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줬습니다. 그는 작은 등불 하나만을 들고 쓸쓸하게 헛간을 떠나 마을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마을은 휑하다 못해 흉흉하기까지 했습니다. 아키바는 사람들이 활동할 시간인데도 지나칠 정도로 조용한 것이 어쩐지 불길하게 느껴졌습니다. 마을을 벗어날 즈음에서야 아키바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훌쩍이고 있는 어떤 사람을 만났습니다.
"괜찮으세요? 혹시 마을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아키바는 조심스럽게 그 사람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였습니다.
"어젯밤에 도적 떼가 마을을 습격해 온갖 물건을 훔치고 마을 사람들의 목숨까지 앗아갔습니다. 저는 겨우 도망을 쳐서 이렇게 목숨만 건졌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아키바는 끔찍한 이야기를 듣고 소름이 끼쳤습니다. 그는 홀로 남은 사람을 위로해 주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리고 곧 어젯밤 일어난 불행한 일이 오히려 그를 살렸음을 깨달았습니다.
아키바는 어제 독서 중에 바람이 불어 등불이 꺼진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만약 등불이 꺼지지 않았더라면 도적 떼는 분명 아키바도 찾아 죽였을 것이었습니다. 또한 아키바의 소중한 개와 당나귀가 목숨을 잃은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만약 개와 당나귀가 살아있었더라면 도적 떼가 동물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아키바를 발견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